펠리페 6세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다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22

펠리페 6세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다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22

5.23(수) María Saenz de Heredia 의전장으로부터 펠리페 6세 국왕앞 신임장 제정식이 6.6(수)로 잡혔다고 연락을 받았다. 부임한지 4개월이 지났으니 예상했던 것 보다는 많이 늦어졌다. 필자보다 먼저 부임한 대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재국의 국가원수에게 파견국 국가원수의 신임장을 제출하는 신임장 제정식은 다분히 의례적인 행사이나, 파견국 대사에게는 나라를 대표하여 처음으로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고, 그만큼 긴장도 많이 된다.

Palacio de Santa Cruz에서 외교부 직원들

스페인의 신임장 제정식은 전통과 격조가 있기로 유명하다. 18세기 중반 카를로스 3세 때 시작된 행사의 틀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흔히들 영국의 신임장 제정식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스페인도 영국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복장은 연미복(white tie)을 입어야 한다. 다행히 연미복을 대여해 주는 곳이 많아 어렵지 않게 옷을 구할 수 있었다. 왕실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를 타고 행사장인 마드리드 왕궁으로 가는 것도 특징이다. 얼마전 6.1(금) 갑작스런 총리와 정부 교체로 분위기가 가라 앉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Palacio de Santa Cruz 앞에 도열한 왕실 근위대

6.6(수) 오전 Ramon María Moreno 의전실 고문의 안내로 약간 비가 오는 가운데 관저를 출발했다. 경찰 모터케이드의 선도로 태극기가 달린 차량을 타고 마드리드 시내를 달리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시후 외교부 의전실이 있는 Palacio de Santa Cruz에 도착하여, Salón de Embajadores(대사의 방)으로 올라가니 최종욱 공사참사관, 유승주참사관, 민보람서기관, 이창원서기관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인사나온 스페인 외교부 직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얼마후 왕궁으로 향하기 위해 건물 정문을 나서니, 왕실 기마 근위대 15여명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엄청난 몸집의 말 위에서 화려한 18세기 유니폼을 입고 도열한 모습은 과히 압도적이었다. 근위대장이 앞으로 나서면서 검(sable)으로 인사를 했고, 필자는 고개를 조금 숙여 답례를 했다.

왕실 근위대장이 필자에게 경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모습

이어 대기하고 있는 사륜 마차에 올라 탔다. 마차의 이름은 Berlina de Gala인데, 19세기에 이사벨 2세와 알폰소 12세가 구입하거나 제작한 것이다. 2인승으로 내부는 비단과 금으로 꾸며졌다. 6마리의 말이 마차를 끄는데, 총 6명(마부, 고삐 잡이, 재갈 잡이 2명, 종자 2명)이 말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들도 18세기 복장을 입고 있다. 대사관 수행원들은 Berlina Coupé 4인승 마차를 타고 뒤를 따른다.

마차에 올라가는 모습

Ramon Moreno 고문과 함께마차에 탄 모습,

잠시후 마차를 앞뒤로 둘러싼 왕실 기마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왕궁으로 향했다. 비도 그쳤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Palacio de Santa Cruz는 시내 대광장(Plaza Mayor) 근처에 있어 왕궁으로 가는 길은 평시에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마차가 지나가는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 색다른 행렬이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창 밖을 보니 한국 사람이라고 짐작되는 아시아인 들도 있었다. 필자를 보고 같은 동양인 인것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필자도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이 즐거운 장면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다. 오직 스페인에 부임한 대사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었다. 국가에 감사할 따름이다.

마차 행렬이 왕궁을 향하여 대광장(Plaza Mayor)를 지나가는 모습

이윽고 마차 행렬이 왕궁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왕궁은 국가의 주요행사가 있는 날만 사용되고, 평시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국왕은 마드리드 북서부 교외에 있는 Palacio de Zarzuela에 거주하고 이곳에 집무실도 있다. 외국 대사들은 일년에 두번 이곳 왕궁에서 국왕 내외에게 인사할 기회가 있는데, 한번은 1월말 외교단 신년하례식이고, 또 한번은 10.12 국경일이다. 마차가 출입문을 지나 왕궁광장(Plaza de la Armería)으로 들어 가자 중앙에 도열한 왕실 의장대와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한다. 아마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이 찡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 있는 Ramon María Moreno 고문이 살며시 미소를 지어준다.

마차 행렬이 왕궁으로 들어 가는 모습

마차는 왕궁 중앙현관에서 멈추었다. 마차에서 내리니 창으로 무장한 근위병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열해 있었고, 대장이 필자에게 인사를 한다. 신임장 제출에 앞서 왕관의 방(Salón del Trono)에 안내되어, Alfredo Martínez Serrano 왕실 의전장, María Saenz 외교부 의전장과 잠시 환담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방은 국왕이 연설이 필요한 주요 행사 개최시 사용하는 곳으로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다. 매년 외교단 신년하례식도 이곳에서 열린다.

왕궁의 Plaza de la Armeria를 통과하는 마차. 왕실 근위대가 국가를 연주한다. 이 사진은 공개된다른 행사 사진임.

왕궁 중앙현관 도착후 창 근위대장의 경례를 받는 모습

왕궁 중앙현관에서 도열한 창 근위대를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모습

Salón del Trono에서 Alfredo Martínez 왕실 의전장과 María Saenz 외교부 의전장

긴장된 마음으로 신임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잠시후 의전장이 행사장인 Salón Oficial로 들어가 국왕에게 ‘대한민국 대사’라고 소개를 했다. 방으로 들어 가니 검은색 예복에 하늘색과 빨간 리본을 두른 펠리페 6세가 서 있었다. 국왕은 키가 197cm로 장신이다. 옆에는 정부 교체로 공석이 된 외교장관 대신 차관보(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음)가 배석하였다. 국왕 앞으로 가서 “국왕 폐하,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로서 신임장을 제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고 말하고, 신임장을 주었다. 국왕은 미소를 띠면서 신임장을 받고 악수를 청하였다. 이후 수행한 대사관 직원들도 차례로 국왕과 악수를 하였다. 이후 옆에 있는 작은 방(Saleta del Nuncio)으로 옮겨 펠리페 6세와 면담을 하였다.

신임장 제출을 위해 필자가 Salón Oficial에 들어 오는 모습

펠리페 6세에게 신임장을 주고 악수하는 모습

펠리페 6세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먼저 필자에게 어떤 언어를 선호하는지 물었다. 혹시 필자가 스페인어가 불편할까 배려를 하는 모습이었다. 부임 축하와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국왕은 한국을 생각하면 무척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국왕의 얼굴을 보니, 과거 자신이 계획했던 방한이 여러 사정으로 두번이나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라고 설명하셨다. 펠리페 6세는 왕세자였던 20세때 88 서울 올림픽 참관을 위해 방한하였다. 그후 세월이 지나 2014년 다시 방한할 계획이었으나 부왕인 후안 카를로스가 갑작스럽게 선위를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2017년에도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태로 방한이 실현되지 못했다.

펠리페 6세와 면담하는 모습

그러면서, 훌륭한 과학기술과 혁신 국가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면서, 신정부의 내각이 구성되는대로 외교장관에게 방한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필자는 이 문제를 간곡히 요청드릴려고 했는데, 국왕께서 먼저 이렇게 약속을 해 주시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양국 관계 현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의전관이 들어 와서 면담을 끝내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다음 대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의전관이 한번더 들어오자 국왕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Jaime Alfonsín Alfonso 시종장 등 왕실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행사를 모두 마쳤다.
행사가 끝난후 왕궁 출발 직전 아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께서 6월 중순 스페인을 국빈 방문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필자가 재임중이었던 2020년 5월에 추진하였으나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었던 방문이 1년만에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아마 왕궁 광장(Plaza de la Armería)에서 공식환영식이 거행되고, 왕궁 Comedor de Gala에서 국빈만찬이 개최될 것으로 생각한다. 2019년 10월 펠리페 6세의 방한과 문재인 대통령의 답방으로 양국관계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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