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확산 및 봉쇄하에서의 스페인 생활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59

코로나 19 확산 및 봉쇄하에서의 스페인 생활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59

코로나 19의 급격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는 3.14 부터 국가경계령(Estado de Alarma)을 발동하여 스페인 전역에 강력한 봉쇄 정책을 시행하였다. 국민들은 식품, 의약품 등 필수품을 구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이 금지되었고, 식품점과 약국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문화, 유흥 시설이 문을 닫았다. 근로자들의 출근도 제한되어 대부분 직장이 재택 근무에 들어 갔고, 3.30-4.9간은 필수 업종외의 근로자들의 출퇴근이 전면 금지되기도 하였다. 도로에서는 경찰의 검문이 시행되었다. 봉쇄 조치와 함께 진단검사 확대, 방역물자 확보, 병상 확대, 의료인력 보강 등 방역 조치도 시행하였다. 재난지원군(UME) 등 연인원 18만명의 군병력도 투입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누적 확진자수는 3.13에 5,232명에서 4.24에는 202,990명으로 증가하였다. 이탈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일일 신규확진자 수는 3월 중순 천명대에서 3월 하순 9천명대 정점을 찍고 서서히 감소하였으나 4월 말까지 여전히 3-4천명대를 유지하였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같이 스페인도 정부의 위기 대응 역량에 여러 문제점이 들어 났다. 부정확한 통계 집계와 잦은 변경으로 통계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충분한 품질 및 가격 검증없이 불량 중국산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비싼 가격으로 사는 등 방역물자를 비효율적으로 구매하였다. 허술한 노인 요양시설 관리로 많은 노인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야당들은 정부를 비판하였고 중앙정부-지방정부간 공조체제도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저녁 8시 발코니에서 의료진에게 감사의 박수를 치는 시민들

오랜 봉쇄 기간으로 국민들도 힘들어 했다. 필자는 매일 대사관에 출근도 하고 관저에 마당이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러나 좁은 아파트에 여러명이 함께 사는 가족들은 고생이 무척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매일 저녁 8시에 발코니에 나와 의료진을 격려하는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는 시간이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중에는 정부에 항의하는 냄비 두드리기(cacerolazo)도 저녁 9시에 생겼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일화가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완견의 산책은 허용이 되어 주인들도 함께 산책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그래서인지 한 애완견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산책시키는 바람에 개들이 많이 지쳐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렸고, 실제로 애완견 구매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저녁 9시 발코니에서 냄비를 두드리는 시민들

다행히 4월말에 접어 들면서 일일 신규 확진자수는 천명 이하로 감소하였다. 정부는 5.4부터 4단계의 점진적 봉쇄조치 완화 계획을 실시하였다. 집 1km 이내에서 하루 1시간의 산책도 허용되었다. 일상의 자유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였다. 6월 중순 이후 일일 확진자수가 200-400명으로 유지되자, 정부는 6.21 국가경계령을 완전히 해제하고 뉴노멀로 진입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여름철 휴가 성수기를 앞두고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관광 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11%의 경제 역성장과 18-24%의 실업율이 전망되었다. 그러나 재확산의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는 여름철 휴가 시즌이 끝난 후 현실이 되고 말았다.

스페인 방송국의 한국 코로나 19 대응 프로그램

봉쇄 기간중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능했다. 모든 외교행사는 중단되었고 꼭 필요한 경우는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이 기간중에 대사관의 최우선 업무는 당연히 우리 국민들의 보호였다. 확진된 몇몇 교민들이 연락을 해와서 마스크와 약품을 보내 주었다. 당시는 워낙 확진자가 많아 국가에서 모두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한 부모님은 유학중인 아들이 마스크를 사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하여 왔다. 정말로 시중에서 마스크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대사관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한국에서도 마스크 배급제가 시행되고 있어 해외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여러 공관들의 건의가 잇따르자 정부에서 재외국민들을 위한 마스크 반출을 승인해 주겠다고 통보가 왔다. 한인회와 협의를 하여 스페인 전국에 있는 230여 가구에 마스크를 배달했다. 마스크를 받은 많은 분들이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라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 왔다. 조그만 성의가 이렇게 큰 감동을 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태분(Sus Lee) 아라곤 한인회장의 페이스북 글과 사진

4.15에는 알헤시라스 항구에 입항한 선박에서 한국인 선박수리 전문가 2명의 입국을 스페인 정부로부터 허가받아 바르셀로나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시켰다. 이들은 2월 중순 대만에서 승선하였으나 선박 수리를 마친 후에도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입국 거부로 하선하지 못하고 스페인까지 왔는데, 서울의 가족들이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4.21에는 적도기니에 있는 한국인 13명이 스페인 정부가 자국 국민 철수를 위해 준비한 전세기 편으로 마드리드에 도착해 4.22 한국으로 떠났다. 스페인과 한국 정부의 협조가 빛나는 부분이었다. 또한 항공편이 중단되어 스페인을 떠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아시아나 항공이 바르셀로나-독일-한국을 연결하는 귀국 항공편 2대를 마련하여 82명이 귀국하였다.

손미나 아나운서가 출연한 Antena3 방송

스페인에서도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정치인들은 한국의 3T 전략을 자주 언급하였다. 필자도 언론의 요청으로 수차례 기고를 하였다. 3.28에는 손미나 아나운서가 스페인 Antena 3 방송에 출연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4.15 한국이 코로나 상황에서도 총선을 정상적으로 실시한 것에 대해 많은 언론 보도는 물론 정부도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4.17 스페인 외교부는 성명에서 “스페인은 한국 국민과 정부가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하에서도 정상적으로 의회선거를 실시한 것을 기쁘게 생각함. 이는 정부의 효율적인 대응,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한국 국민들의 개별적 그리고 집단적인 책임의식의 결과임.”라고 발표하였다. 이 정도면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5월초에는 스페인 정부에 한국 신속진단키트 67만개를 수출하였다. 3월에 중국산 진단키트에서 불량품이 나와 비판 여론이 거세진 이후에 스페인 정부가 한국산 키트 구매를 강력히 희망하였기 때문이다. 추후 스페인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진단 키트의 효능이 매우 높았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 왔다.

6.4 펠리페 6세와 전화통화하는 문재인 대통령

6.5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펠리페 6세의 요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였다. 양 정상은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그동안의 양국 협력을 평가하고,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펠리페 6세가 한국의 효율적인 대응과 성공적인 4.15 총선 실시를 축하한 것은 물론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스페인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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