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예약
집도 구하고 아이 학교도 보내고 나니 큰 숙제는 다 해낸 것 같았다. 스페인에 살기로 결정했던 여름부터 목구멍 아래 얹어져 있던 벽돌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뭐 먹고 사나 고민만 해도 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드디어 ‘일상’이라는 것이 시작되고 매일 아침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나면 게으름을 좀 부리다 오늘의 저녁거리를 사러 집밖을 나선다. 처음엔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마련하느라 슈퍼마켓에서 한참을 보내기도 했는데, 살 게 많아서가 아니라 뭘 사야 하는지를 몰라서였다. 한국에선 어떤 브랜드를 사야 하는지, 물건 가격이 얼마 정도면 합리적인지를 체득하고 있으니 어려울 일이 전혀 없었지만 바르셀로나에 오니 슈퍼마켓이라는 걸 처음 접해보는 사람처럼 쩔쩔매고 있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세제 하나를 사려고 해도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어느 정도 가격대를 골라야 하는지 한참을 그 앞에 서서 고민해야 했다. 게다가 환율 개념이 익숙지가 않아 가격을 따져보는 것도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번역기를 돌려봐도 외계어 같은 말들만 토해내는가 하면 이 동네 흔한 ‘두 개 사면 하나는 50% 세일’의 유혹에도 시달려야 했다(사실 따져보면 그리 큰 할인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동네를 다니다가도 재래시장을 발견하면 꼭 들어가 본다. 알록달록 북적북적한 모습이 왠지 기분을 설레게 만들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이때만큼은 관광객인 척.
스페인에는 많은 슈퍼마켓 체인이 있다. Carrfour, Mercadona, Lidl, Caprabo, Alcampo, Aldi, SuperCor 등…. 우리 집만 하더라도 걸어서 5분 이내에 마트가 세 개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대형 브랜드에 잠식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과일가게, 채소가게, 정육점 외에도 옷, 장난감, 초콜렛, 신발 등 세분화된 소규모 가게들이 골목마다 즐비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쇼윈도를 때맞춰 –할로윈, 크리스마스, 동방박사 축일, 카니발, 부활절 등 일년 내내 줄줄이 이벤트다- 꾸며놓는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나도 어느 정도 이 동네 생활이 익숙해지니 채소는 어디서 사야 좋은지, 정육점에 가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백화점 슈퍼마켓에선 뭘 사면 좋은지 등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한국, 일본 사람들도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의 정육점엔 누가 써준 건지 ‘불고기’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샤브샤브용으로 달라고 하면 생고기를 잘도 얇게 썰어준다.
특히 과일, 야채, 고기 값이 한국과 비교하면 꽤나 저렴하고 다양해서 저녁거리 사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었다(여기서 아낀 비용이 비싼 가스비, 전기료, 수도세로 나간다는 사실이 함정이지만). 남편이 혼자 바르셀로나에 살 때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돼지고기 값이 무서워서 못 먹겠다 -잘만 먹어놓고선- 하곤 했는데, 정말 맛도 가격도 훌륭해서 고기 하난 실컷 먹을 수 있어 좋다. 상대적으로 닭고기가 비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한국슈퍼마켓. 사실 라면과 과자를 주로 산다. 여기 가는 걸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은 한국과자를 살 수 있다는 걸 아는 우리 아이다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버스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웬만한 건 구비되어 있고, 배추나 무 정도는 동네 야채가게에서도 팔고 있다. 또 카탈루냐 광장이나 개선문 쪽으로 나가면 꽤 많은 중국 슈퍼마켓에서 한국식품을 비롯한 다양한 아시안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하루 날 잡아 다녀온 후 찬장 그득히 라면이 채워진 걸 보면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다. 왜 한국서 살 때보다 라면을 더 자주 사먹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구하기 어려운 게 있다면 매운 고추, (맛있는) 두부, 젓갈, 건어물 정도인데, 때문에 한국에 다녀올 땐 고춧가루, 멸치, 오징어채, 꽁꽁 싸맨 명란젓, 낙지젓 등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가방 가득 싣고 오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우리엄마의 잡채 만드는 법을 배워보았다. 삶은 당면을 안 헹궈 양념하다 다시 찬물에 담가야 했지만;; 그래도 맛은 성공!
한국에 살 땐 열흘 넘게 해외여행을 떠나도 한식 생각이 단 한번도 나지 않던 나였는데, 이제는 매일 쌀밥과 국물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영 생경하기만 하다. 게다가 친정과 너무도 가깝게 살아온 덕에 스스로 안 해본 음식이 정말 많았다는 걸 여기 와서 깨달았다. 김치도, 불고기도, 잡채도 모두 처음 해보는 거라 친정엄마에게 영상통화로, 문자로 물어가며 이제서야 그렇게 한식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도 따라갈 수 없는 그 맛, 엄마 밥이 먹고 싶다.
Won 에디터
출판사에 근무하다 결혼과 출산, 너무도 평범하고 평화롭게 살던 서울 사람. 지금은 쉬운 듯 쉽지 않은 바르셀로나 생활을 막 시작한 꼬레아나 W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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