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자동차 시상식)
다음날인 2.13(화) 산타 크루스 궁(Palacio de Santa Cruz)을 방문하여 마리아 사엔스 데 에레디아(María Saenz de Heredia) 외교부 의전장에게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였다.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출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통상 사본을 먼저 제출하여 대사의 외교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는 사본을 제출하면 왕실 관련 행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활동이 가능하다. 산타 크루스 궁은 17세기 펠리페 4세 시대에 감옥으로 건설된 바로크 풍의 건물로 지금은 외교부 의전실이 사용하고 있고, 시내 대광장(Plaza Mayor) 인근에 있어 찾기가 쉽다.
2.14(수)에는 언론그룹 프렌사 이베리카(Prensa Ibérica)와 라 방구아르디아(La Vanguardia)가 주최한 올해의 자동차 시상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이 상은 독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현대 i30가 최다 득표를 하여 수상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 법인장과 함께 행사장에 도착하여 양 그룹의 하비에르 몰(Javier Moll) 회장과 하비에르 고도(Javier Godó) 회장과 인사를 나눈 후 이뉘고 데 라 세르나(Iñigo de la Serna) 개발부 (건설인프라교통부) 장관을 영접하였다. 세르나 장관은 필자가 새로이 부임하여 오늘 처음으로 대외행사에 참석한다고 말하자, 매우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앞으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기를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고 덕담을 하였다. 한국자동차가 스페인에서 이렇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과 함께 부임하자마자 개발부장관과 주요 언론그룹 회장들을 만나게 되어 더없이 귀중한 부임 선물이 되었던 것 같다.
스페인은 9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17개 공장에서 연간 28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9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현대자동차는 스페인에 생산시설이 없음에도 유럽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개발한 i20, i30, i40 자동차를 수출하여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연간 판매량은 6만대 정도이고, 기아자동차도 6만대 정도를 판매하여, 스페인 자동차 시장의 약 9%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겨울 스포츠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눈이 오는 곳이 북부 피레네 산맥 지역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겨울 스포츠 강국이어서 평창올림픽에 많은 국가원수, 정부수반 또는 장관급 인사들이 참석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스페인에서는 고위급 인사가 참석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2.15(목) 레히노 에르난(Regino Hernán) 선수가 스노우보드 크로스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모든 방송에서 보도가 되었다. 스페인이 동계올림픽에서 1992년 이후 26년 만에 메달을 땄다면서 흥분하였다. 2.17(토)에는 하비에르 페르난데스(Javier Fernández) 선수가 남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또 들려 왔다. 펠리페 6세 국왕과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총리는 선수단이 귀국한 후 사르수엘라(Zarzuela) 궁과 몽클로아(Moncloa) 궁에서 각각 이들을 접견하고 축하하였다.
이렇게 별 상관이 없어 보이던 평창올림픽과 스페인이 연결이 되고, 사람들은 한국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중에 페르난데스 선수를 만났고, 종종 대사관 행사에 참석해주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이 선수는 김연아 선수와도 친해 그해 12월에 마드리드에서 개최한 아이스쇼에 김연아 선수를 초청하여, 필자도 김연아 선수와 만나 사진을 찍는 행운을 가졌다.
(알데폰소 카스트로 외교차관 부임 예방)
이후 2.20(화) 피델 센다고르타(Fidel Sendagorta) 외교부 북미·아태국장과 3.5(월) 일데폰소 카스트로(Ildefonso Castro) 외교차관을 각각 부임 예방했는데, 스페인의 메달 획득 소식으로 대화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또한 남북한 개회식 공동입장,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개회식과 페회식 참석 등 남북 화해 분위기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에게 부임할 때 가져온 평창올림픽 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더니,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목도리를 두르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2.21(수)에는 세계관광기구(UNWTO)가 주최한 아태지역 상주대표 초청 연례 오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세계관광기구는 유엔 전문기관으로 관광대국인 스페인이 1974년 사무국을 유치한 국제기구이다. 영어로는 “World Tourism Organization” 인데,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와 영어약자가 같아 구분을 위해 앞에 UN을 붙여 UNWTO로 불리고 있다. 사무국은 마드리드 시내 테투안(Tetuán) 지역에 있는데, 길 건너편에 관광차관실 등 정부건물이 있고, 멜리아 카스티야(Meliá Castilla) 호텔과 파에야(Paella)를 잘하는 알부페라(Albufera) 식당이 위치하고 있어 편리한 곳이다.
스페인에 상주하는 국가들의 대사는 대개 UNWTO 상주대표를 겸임하고 있고, 필자도 한국 상주대표로 발령을 받았다. 이날 회의는 2018.1.1에 새로이 취임한 주랍 폴롤리카쉬빌리(Zurab Pololikashvili) 사무총장이 상주대표들과 갖는 첫 번째 행사여서 그런지, 대부분 아태지역 상주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신임 사무총장은 조지아 경제장관과 주스페인대사를 역임한 인물로 지난해 사무총장 선거에서 한국의 도영심 STEP (지속가능관광-빈곤퇴치) 재단 이사장을 1표차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우리에게는 무척 아쉬운 패배였다. 사무총장의 성 폴롤리카쉬빌리(Pololikashvili)가 너무 길고 발음이 어려워, 사람들은 이름 주랍(Zurab)을 자주 부르곤 했다.
주랍 사무총장은 앞으로 UNWTO를 이끌어 갈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설명하였고, 각국 대표들과 아태지역과의 협력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태지역 관광공무원 훈련 프로그램 등과 같은 우리정부의 지원을 평가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UNWTO와의 협력사례를 설명하였다. 아울러 서울시가 9.16-19 개최 예정인 세계도시관광총회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지속가능관광을 위한 혁신과 디지털 전환에 중점을 두었던 주랍 사무총장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희망하였고, 이후 필자는 주랍 사무총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을 추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