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첫 방문에서의 이모저모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05

바르셀로나 첫 방문에서의 이모저모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05

(카탈루냐 한인회)

MWC 참가 기간중에 시간을 내어 바르셀로나의 한국 관련 인사들을 만나 상견례를 가졌다. 먼저 한인회와 만찬 간담회를 가졌는데, 박천욱 회장, 이덕 부회장, 손영도 부회장 등 7분이 나오셨다. 박천욱 회장은 1983년 태권도 용품 기업인 “대도 인터내셔널”을 설립하여, 현재 전 세계에 도복, 전자호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발전시킨 분이다. 카탈루냐 한인회장을 오래 역임하였고, 2019년 1월 개설된 주바르셀로나 총영사관 개설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였다. 공관이 없고 한국 방문객이 증가하는 바르셀로나에서 한인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간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고 계속적인 협조를 당부드렸다.
수고하시는 한국분들중에 특히 영사협력원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이광덕 “소나무 투어” 사장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영사협력원은 공관이 없는 지역에서 우리 국민 보호, 사건사고 처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외교부가 운영하는 제도이다. 잘 아시다시피, 2017년 스페인을 방문한 한국인은 45만명에 달했고, 2019년에는 63만명으로 증가했다. 방문객 중 반 이상이 바르셀로나를 통해 입출국하였고, 신고되는 사건사고도 절반이 바르셀로나에서 발생하였다. 당연히 영사협력원의 업무가 증가하고, 본인 사업에도 부담이 많은데도, 대사관을 대신하여 성심성의를 다해 업무를 처리해 주었다. 주바르셀로나 총영사관이 개설되면서 영사협력원을 그만 두었지만,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한다.
구아르단스(Guardans) 명예영사의 사무실도 방문하였다. 사무실이 본인이 경영하는 우니코(Unico) 호텔에 있어 오찬도 함께 하면서, 카탈루냐 정세, 주바르셀로나 명예영사단 현황에 대해 유익한 이야기를 들었다. 구아르단스 명예영사는 경제부 국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으로 대사관과 한국교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분도 주바르셀로나 총영사관 개설로 명예영사를 그만 두게 된다. 스페인에는 발렌시아, 빌바오, 세비야에도 명예영사관을 두고 있는데,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Guardans 명예영사)
바르셀로나에는 아시아와의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스페인 외교부가 지방정부와 공동으로 2001년 설립한 카사 아시아(Casa Asia)가 있다. 영어로는 Asia House로 번역이 되는데, 아시아 교류재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2.27(화)에는 다비드 나바로 가르시아(David Navarro Garcia) 원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직전에 한국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필자를 친근하게 맞아 주었다. 최근 스페인에 한류의 인기가 많아, 카사 아시아에서도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카사 아시아는 한국과 스페인간 1.5 트랙 대화 채널인 한-스페인 포럼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어, 대사관으로서는 중요한 업무 파트너이다. 장소가 바르셀로나에 있어 다소 불편한 점이 있으나, 마드리드에 지부를 두고 있어 보완이 된다.
바르셀로나는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성가족 성당, 구엘 공원, 카사 밀라, 라스 람블라스 거리, 고딕 지구, 몬주익 언덕 등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당시는 필자도 바르셀로나가 처음이고 해서, 성가족 성당을 가 보았다. 건축물도 좋았지만, “가장 고귀한 신앙은 자연이다”는 가우디의 철학처럼 성당안으로 들어 오는 갖가지 자연 채광이 너무 예뻤던 기억이 난다. 부임전 스페인의 명소에 한국어 음성 서비스를 확대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터라, 성당의 음성 서비스를 확인해 보니 한국어는 없었다. 이후 마드리드로 돌아 와서 성당측과 이 문제를 교섭하여 한국어 음성서비스를 설치하게 되는데,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여러 인사들을 만나면서 불안한 카탈루냐 정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7개월전인 2017년 8월 17일에 바르셀로나의 번화가인 라스 람블라스 거리에서 발생한 이슬람 테러 사건이다. 스페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모로코 출신 이민 2세들이 차량을 돌진하여 13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2004년 3월 11일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191명 사망, 1,700여명 부상)에 이어 스페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필자가 가장 희생이 컸다는 장소에 가보았는데, 그곳에는 호안 미로의 예쁜 모자이크 작품이 땅에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차량을 몰고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니, 그 끔찍한 광경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의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번째는 모두 잘 아시는 카탈루냐 분리독립 문제가 단연 최대의 화두였다.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채 2달도 지나지 않은 2017년 10월 1일 중앙정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경 분리주의자인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 주지사가 주민투표를 강행한다. 투표 참여자 42%중 90%가 분리독립에 찬성하였고, 10.27 카탈루냐 주의회는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에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헌법 제155조를 발동하여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정지하고,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하게 된다. 주정부 지도부는 체포령이 내려져서 오리올 융케라스(Oriol Junqueras) 부지사 등 10명은 체포되었으나, 푸지데몬 주지사는 주장관 4명과 함께 브뤼셀로 도피한다. 주민들은 분리독립 지지파와 반대파로 분열되고, 카탈루냐에 본부를 둔 많은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갔다. 라호이 총리는 분리주의 정당들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었다고 판단하고, 12.21 주의회 조기 선거를 실시하지만 이들은 다시 과반을 획득하여 정권을 잡는다.
MWC가 개최된 2월말에는 브뤼셀에 도피한 푸지데몬의 주지사 취임 여부에 대한 공방으로 주정부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었고, 아다 콜라우(Ada Colau) 바르셀로나 시장은 MWC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펠리페 6세 국왕을 영접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카탈루냐 문제는 오랜 역사적 근원을 가진 복잡한 사안으로 2010년 이후 분리독립 추진이 본격화되었는데, 필자의 스페인 재임 기간 내내 신경을 써야했고 대사관의 업무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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