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글에서 카탈루냐 분리독립 문제에 대해 잠시 언급한 바가 있어, 내친 김에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카탈루냐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 세력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9세기에 남부 국경지역에 설치한 여러 백작령들중 하나인 바르셀로나 백작령에서 출발한다.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10세기에 프랑크 왕국에서 독립하였고, 이후 13세기 아라곤 왕국, 15세기 아라곤-카스티야 연합왕국에 통합되었으나, 자치권은 계속 유지한다. 그러나 18세기초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승리한 부르봉 왕조는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전쟁시 합스부르크 왕조 편에 섰던 카탈루냐를 1716년 스페인의 한 주로 편입시키고 자치권을 박탈한다. 카탈루냐는 끝까지 강력히 저항하였지만 1714년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배하는데, 카탈루냐는 패배일인 9월 11일을 카탈루냐의 날(La Diada)로 기념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1931년 제2 공화국의 출범으로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되찾고, 자치정부인 제네랄리타트(Generalitat)를 구성한다. 그러나, 내전(1936-39)에 승리한 프랑코 총통은 내전시 인민전선을 지원했던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다시 빼앗고, 카탈루냐어 사용도 금지한다. 이후 스페인의 민주화에 따라 1978년 헌법과 1979년 카탈루냐 자치법에 의해 다시 자치권을 회복한다.
이후에도 카탈루냐는 자치권의 확대를 계속 모색하였고, 2005년 9월 카탈루냐를 국가(nation)으로 규정하고, 세금징수, 이민정책, 사법체계 등에서 권한을 확대하는 새로운 자치법안을 스페인 의회에 제출한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Rodriguez Zapatero)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난상토론 끝에 의회에서 법안을 승인하였고, 2006년 6월 카탈루냐 주민투표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4년후인 2010년 6월 헌법재판소가 카탈루냐를 국가(nation)로 규정한 것은 법적 가치가 없고, 확대된 자치권을 제거 내지 수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11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는 등 카탈루냐 주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카탈루냐가 스페인 GDP의 20%를 생산하는데, 인구는 14%에 불과하여 GDP에 상응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도 특히 2008년 스페인 경제위기 이후 함께 표출되었다. 카탈루냐는 식품, 자동차, 화학, 제약, 디지털, 패션, 관광 산업이 발달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후 카탈루냐 정치권에서는 분리독립 주장이 표출되었고, 정당들도 이념을 떠나 분리독립 지지 여부로 편이 나누어지게 된다. 2015년 9월 선거에서 PDeCat, ERC와 같은 분리독립 지지 정당들의 연합인 Junts pel Si(모두가 함께, 찬성을 위해)가 승리하였고, 2017년 10월 분리독립 주민투표후 12월에 실시한 선거에서도 이들이 계속 정권을 잡게 된다.
브뤼셀로 도피한 푸지데몬에 이어 2018년 5월 주지사로 취임한 킴 토라(Quim Torra)는 투옥자 석방과 주민 자결권을 요구하면서 계속 중앙정부와 대립하게 된다. 2019년 10월 14일에 대법원이 투옥자 10명에 대해 9-13년의 형을 선고하자, 화가 난 분리독립 지지자들이 바르셀로나 공항을 점거하였는데, 제네랄리타트는 점거 시위에 공감과 연대를 표명하였고, 킴 토라 주지사는 직접 시위에 참가까지 하였다. 분리독립 캠페인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보건, 교육과 같은 주민 복지를 위한 예산은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GDP 1위 자리도 마드리드주에게 내주었다. 전 세계 18개국에 카탈루냐 대표부를 설치하고 있는데, 비공식적으로 ‘대사관’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중앙정부는 이를 비난하고 계속해서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당연히 외교단과 바르셀로나 영사단에 제네랄리타트와의 접촉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한다. 명예영사중 일부 스페인인들이 분리독립에 동조한 적은 있으나, 정상적인 외교단과 영사단은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문제는 제네랄리타트가 일상적인 영사단과의 모임이나 외국대표단과의 회동시 갑자기 분리독립 이야기를 꺼내면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주와 실질협력을 위해 필요한 접촉은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항상 조심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