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 지역은 너무 잘 알려져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스페인과 인종과 언어가 완전히 다르고 오랜 기간 독립을 갈망해 왔다. 이 지역의 정식 명칭이 스페인 말로 País Vasco(바스크 말로는 Euskadi)인데, País는 국가(country)라는 뜻이다. 얼마나 독립을 갈망했는지 짐작이 간다. 바스크 사람들은 현재 자치주 뿐만 아니라 인근 나바라 자치주와 프랑스 남부 국경지역에도 살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 무장단체 ETA를 검거하기 위해서 프랑스 경찰과 협조하는 장면이 자주 뉴스에 나왔다.
5.23(수)-25(금) 개최된 UNWTO(세계관광기구) 집행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창원서기관과 함께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에 출장을 갔다. 산세바스티안은 프랑스와 접하는 바스크 지역의 동쪽에 위치하며, 에피소드 8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바스크 말로는 도노스티아(Donostia) 라고 불린다. 조개껍질 모양의 예쁜 꼰차(concha) 해변에 국제영화제(9월), 재즈 페스티벌(7월)이 열리는 문화와 관광의 도시이다.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는 3대 영화제는 아니지만, 1957년에 시작된 전통있는 공인 영화제로 한국 작품도 매년 초청되고 있다. 한국영화도 2003년 봉준호 감독, 2016년 홍상수 감독이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2003-2004년 시즌에 이천수 선수가 뛰었던 Real Sociedad 팀이 산세바스티안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세바스티안은 미식의 도시이다. 인구 18만명의 작은 도시에 미쉐린 스타 식당이 10개나 있고, 이중 3개가 3 스타이다(스페인에는 총 11개의 3 스타 식당이 있음). 바스크 지역 전체에 22개의 미쉐린 스타 식당과 4개의 3 스타 식당이 있으니, 이 지역이 요리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가격이 500유로나 하고, 1년전에 예약을 해야 된다고 하니, 보통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활기차고 서민적인 핀초(Pintxos) 거리가 더 산세바스티안을 대표하고 이곳의 명물이라고 생각한다.
회의는 Kursaal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고, 한국에서도 금기형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장과 도영심 STEP 재단 이사장이 참석하였다. Zurab 신임 사무총장의 취임후 첫 회의라 신임 간부 발표가 관심이었는데, 콜롬비아 출신으로 주한 대사와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역임한 Jaime Alberto Cabal이 사무차장으로 선출되어, 필자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집행이사국은 33개국인데 관광장관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회의 의장을 맡은 아르헨티나 관광장관은 필자가 업무협의를 위해 별도 면담을 하였는데, 필자의 요청을 진지하게 들어주어 무척 인상에 남는다.
이 출장에서는 또한 필자가 수교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한 2020년 마드리드 국제관광박람회(Fitur) 주빈국 참가 문제에 진전을 보게 되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스페인 Fitur측에서도 한국을 주빈국으로 선정해준다는 보장도 없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먼저 Fitur 관계자들이 필자를 찾아 왔다. 그들은 얼마전 이창원 서기관을 면담한 적이 있어 우리측의 관심을 알고 있었다. 관심을 표명한 다른 국가들도 있으나, 한국이 희망할 경우 최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고 말하면서 조속히 결정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다음으로 금기형 관광정책국장과 회의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핀초 식당에서 와인을 한잔하면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필자는 수교 70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세계 3대 관광박람회인 Fitur의 주빈국 참가를 통해서 스페인은 물론 유럽, 중남미 국민들의 한국 관광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실질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전향적인 검토를 요청하였다. 이틀을 함께 지내 친해졌기 때문이었을까? 금기형 국장은 미소를 띠면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하였다. 필자는 지금도 “만약 그때 산세바스티안에서 금기형 국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2020년 Fitur 주빈국 참가가 실현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5.25(금) 오전에 회의가 끝나고, 자동차를 렌트하여 빌바오로 향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대서양을 따라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곳 풍경은 산이 많고 수풀이 우거져 있어 한국과 비슷하다. 황량하고 누런 평원이 펼쳐진 스페인의 일반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겨울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들 바스크 지역(빌바오)은 1980-90년대에 제철, 조선 산업이 쇠퇴하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는 등 문화도시로 변모하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2차 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지역은 여전히 스페인의 대표적인 산업 지역으로 2차산업 비중이 21.5%나 된다(스페인 전체는 14.4%). 엄청난 혁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완성차 공장,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기업인 CIE Automotive 본부와 Gestamp 공장이 이곳에 있다. 스페인 제1의 철도차량 제조기업 CAF, 세계 제1의 풍력터빈 제조업체 Giemens-Gamesa, 세계 제1의 풍력발전회사 Iberdrola, 스페인 제2의 은행 BBVA 본부도 있다. 이외에도 정유(Repsol), 기계(Danobat), 엔지니어링(SENER) 산업도 발달해 있으며, 예전같지는 않지만 제철(ArceloMittal), 조선(Murueta)도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을 일으켜 스페인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성장했던 저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