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초에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조직 개편과 장차관 등 고위직 인사가 신속히 진행되었다. 한국과 달리 법률 개정이나 인사청문회가 필요없기 때문에 곧바로 신정부가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산체스 총리가 평시에 집권시 계획을 준비하였던 것 같다고 언론은 보도하였다. 필자의 가장 관심의 대상은 당연히 외교부장관인데, 조셉 보렐(Josep Borrell) 전 유럽의회 의장이 임명되었다. 보렐장관은 하원의원, 건설교통부장관, 사회당 당수를 역임한 후, 2004년에는 유럽의회에 진출하여 의장에 선출된 거물 정치인이었다. 당시 71세였는데, 46세의 젊은 산체스 총리가 아버지뻘 되는 노련한 정치인을 외교부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보렐 장관은 1년후에 유럽연합(EU) 외교안보고위대표 겸 부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일하고 있다.
7월에 들어서니 Xiana Méndez 신임 통상차관이 7.10(화) 면담을 하자고 연락해 왔다. 사실 정부 교체 이전에 면담을 요청하였는데, 차관 교체로 지연되다가, 신임 차관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 교체에도 잊지 않고 연락을 해준 Maria Aparici 부국장이 고마왔다. Méndez 차관은 경제부 공무원으로 주에콰도르대사관 경제참사관에서 곧장 통상차관으로 파격 승진한 41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한국을 좋아하고 성격이 활달하여 필자와 재임기간 내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날 면담에는 여름 휴가차 귀국한 Antonio Estébez 주한대사관 경제참사관도 함께 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양국 현안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특히 11월에 예정된 제6차 한-스페인 경제공동위 개최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다.
7.13(금)에는 Rebeca Grynspan 이베로아메리카 사무총장이 관저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Juan Pablo de Laiglesia 신임 이베로아메리카 및 국제협력 차관과 인사를 나누었다. Grynspan 사무총장은 지난 6.12 면담 이후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에 지속적으로 필자를 초청하였는데, 중남미와 관련된 외교관, 정부인사,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참석자들 중 필자가 유일한 비중남미 국가 대사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Grynspan 사무총장이 항상 손님들에게 필자를 소개시켜 주는 등 특별 대우를 받았다. 이날도 사무총장이 필자를 Laiglesia 차관에게 직접 데려가 소개를 시켰는데, 필자가 “중남미를 미국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을 벗어나, 스페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이야기하자, Laiglesia 차관은 공감하면서 “스페인과 중남미는 모든 면에서 하나이고,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현실은 많이 다르겠지만, 스페인이 추구하는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정신을 설명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스페인은 중남미를 지칭하는 보편화된 용어인 ‘라틴아메리카’를 사용하지 않고, ‘이베로아메리카’ 용어를 고수하고 있다. 얼마되지 않는 프랑스 식민지까지 포함하는 라틴아메리카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일까?
이 모임에서 필자는 산체스 총리의 외교비서관으로 임명된 Victorio Redondo Baldrich와도 인사하였다. Baldrich 비서관은 한국이 스페인의 대아시아 정책에서 최우선 국가중 하나이고, 산체스 총리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언제 한번 별도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제의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이전 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있던 몇몇 지인들은 운이 좋지 않았다. 필자의 카운터파트인 Fidel Sendagorta 국장은 주일본대사로 내정된 상태였으나, 정부가 바뀌면서 나가지 못하고 미국 연수를 떠나게 된다. 주한대사관 경제참사관을 지내고 경제부의 통상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필자를 많이 도와주었던 Antonio Rebollar는 통상투자청(ICEX)의 교육국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밖에 7월에는 7.7(토) 시내 Gran Via의 Luz Philips 극장에서 K-Pop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많은 스페인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1,000여개의 좌석이 꽉 찼다.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 서은지 외교부 심의관과 KBS의 담당팀이 출장을 와서 행사를 촬영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유명 한류 유튜버인 황진이씨가 사회를 보는 등 행사가 매우 다채로웠다.
7.16(월) 서-한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필자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글로벌 종합에너지 기업이자 서-한 상공회의소의 주축 회원인 렙솔(Repsol)이 주관한 이 자리는 필자의 부임 환영과 함께 향후 중점 업무계획을 듣기 위해 마련되었다. 고급스러운 타원형 회의실에서 개최된 간담회에는 회원 기업들은 물론 외교부와 경제부 인사도 참석하였다. 필자 옆 자리에 앉은 Josu Jon Imaz 사장은 SK 루브리컨츠와의 윤활기유 생산공장 설립과 기아자동차와의 카세어링 합작투자 현황을 설명하면서, 한국기업들과 사업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다고 만족을 표명하였다. 2012년 설립된 상공회의소는 그당시 활동이 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7.17(화)-19(목)에는 런던에서 개최된 유럽지역 공관장회의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강경화 장관님과 동료 대사들을 만나고, 대유럽외교 방안을 협의하는 기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