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전통적인 외교에서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우리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외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문화외교는 공공외교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내외 정책을 주재국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정책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SNS를 통한 소통이 중요한데, 스페인외교관학교에서 실시한 마드리드 주재 외국 공관들의 SNS 활동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대사관이 가장 활발한 공관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주재국 언론 기고와 인터뷰도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주재국의 각계 주요인사들을 대상으로한 강연 또는 발표가 효과적인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지난 1년간 스페인의 여러 유명 재단과 포럼 행사에 참석하면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여 왔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외교아카데미(Academia de la Diplomacia)의 Santiago Velo de Antelo 회장이 레알마드리드(Real Madrid) 재단과 공동으로 1.31 ‘스포츠와 외교’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면서, 필자에게 발표를 요청하였다. 작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개선된 사례를 발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시하였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더없이 좋은 기회여서 즉시 수락하였다.
행사는 Villa Magna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먼저 재단 관계자, 발표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행사장에 들어가니 200여석의 자리가 꽉 차있었다. 유명 언론인 Irene Villa가 사회를 맡았다. 그녀는 바스크 무장분리주의 단체 ETA의 폭탄 테러로 두발을 잃었던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발표자로는 필자외에 Conrado Durántez 올림픽 아카데미 회장, Julio Gonzalez 레알 마드리드 재단 사무총장, Santiago Velo 외교아카데미 회장, Teresa Perales 장애인 수영선수가 참석했다. Teresa Perales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6차례 패럴림픽에서 27개의 메달을 획득하였고, 정치인으로도 활동한 유명인이다. 스포츠가 국위선양과 세계평화에 기여한 여러 사례들이 이야기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이 스페인의 훌륭한 친선대사라는 말도 나왔다.
필자는 발표자중 유일하게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를 담은 파워포인트로 발표하였고, 주제도 특별하여 청중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도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 단일팀 구성, 전통 스포츠인 씨름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공동 등재, 2032년 올림픽 공동유치 등 스포츠가 남북간 화해와 교류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2032년 올림픽 공동유치는 사회를 맡은 Irene Villa 먼저 소개하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2019.1.10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핸드볼 선수권대회 개막전(독일대 남북단일팀)을 앞두고, 하스 독일 외교장관이 발표한 성명문을 인용하면서 발표를 마쳤다.
“독일팀과 남북단일팀의 오늘 개막전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저야 물론 독일팀을 응원하겠지만, 동시에 평화와 화해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내고 있는 한국팀 때문에 매우 행복합니다.”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이때의 흐름이 계속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스포츠가 또다시 남북 화해 분위기에 기여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날 발표 이후 평화와 협력 재단 (Fundación de Paz y Cooperación) 등 여러 단체에서 발표 초청이 들어 와서, 레알 마드리드 재단의 유명세를 실감하였다.
6.13에는 Executive Forum에 초청되어, “한국 : 전쟁의 잿더미에서 국제사회의 주도국으로, 한-스페인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Executive Forum은 스페인 주요인사들을 초청하여 관심주제에 대한 발표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권위있는 포럼이다. 필자는 지난 1년간 이 포럼에 꾸준하게 참석하여 스페인 인사들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 대사들의 발표를 들었다. 내심 부러움을 느끼면서 필자도 초청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필자의 발표를 후원할 스페인 기업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한국과 비즈니스가 많은 Bergé 그룹과 Gómez Acebo & Pombo에서 후원을 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경제발전을 많이 한 나라’ 정도로 한정된 스페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치, 교육, 과학기술 및 혁신, 문화를 정확히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면서 발표문과 파워포인트를 작성하였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꼼꼼히 준비하였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참석자가 100명이 넘었고, 질문이 너무 많아 포럼을 마치고 개별 질의응답을 한시간 더 가졌다. 변화된 한국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면서 가슴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9.26에는 시민의 디지털 권리 제고를 위해 설립된 헤르메스 재단에서 한국의 디지털 경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 재단은 스페인의 거대 금융그룹인 Caixa가 설립하였는데, 어느날 Enrique Gono 이사장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발표를 부탁하였다. 디지털 경제에 대해 지식이 많지 않아 고민을 했으나, 전자정부, 세계 최초 5G 상용화 등 자료를 대략 모아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막상 발표장에 도착하니 35명의 참석자가 모두 정부, 재계, 문화계 고위인사들이라 깜짝 놀랐다. Pedro Saura 개발부 차관, Fernando Abril 인드라(스페인대표기술기업) CEO, Ricardo Marti 레이나소피아 미술관 이사회 의장, Manuel Mirat 프리사(미디어그룹) CEO가 필자의 주변에서 디지털은 물론 한-서 양국관계, 한반도 정세, 미중 갈등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한 인사는 한국의 바둑에 대한 질문도 하여 필자를 놀라게 했다. 많은 질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