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사관 이야기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44

북한대사관 이야기
전홍조 대사의 스페인 일기 ep. 44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2.22(금) 저녁에 관저에서 한 주간의 업무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주 바르셀로나 MWC 출장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방금 스페인 경찰차들이 대사관 앞으로 와서 한참을 둘러보고 갔는데, 아무래도 북한대사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보고하였다. 혹시 북한 사람이 대사관을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서, 스페인 경찰에 상황을 파악해 보라고 지시하고, 다음날 아침에 직원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확인한 결과,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북한대사관을 습격하여, 직원들을 감금, 구타하고 컴퓨터 등을 훔쳐 도주하였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이례적인 사건이라 스페인 언론들도 추측성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2.22 저녁 경찰이 우리 대사관에 출동한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우리 대사관의 연루 가능성을 암시하는듯한 기사도 있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님을 설명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 언론들은 더이상 우리 대사관의 연루 가능성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하노이, 2.27-28)을 불과 며칠 앞두고 발생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언론들의 관심도 높아, 많은 문의가 있었고, 직접 마드리드로 취재를 온 언론도 있었다.
이 사건은 3.26 스페인 국가고등법원(Audiencia Nacional)의 발표로 대략적인 윤곽이 들어 났는데, 한국계 미국인들이 주축이 된 반북단체 자유조선(구 천리마 민방위)의 소행이었던 것이 확실하였다. 자신들이 이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수사의 초점은 자연히 미국으로 갔고 한국 언론의 관심도 수그러들었다.
이 사건 이후 북한대사관은 극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며 거의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범행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대사대리(3등서기관)는 스페인 당국에 여러차례 더욱 강력한 공관 보호 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북한외교관을 2018년10월 Josep Borrell 외교장관 간담회 장소에서 만나 한번 인사를 했다. 키가 크고 부드러운 젊은 외교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렸을때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페루에서 살아 스페인어도 잘 한다고 한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은 2013년 10월에 개설되었고, 초대 대사로 김혁철 대사가 2014년 1월에 부임하였다. 김혁철 대사와 함께 있었던 동료 대사들은 김 대사가 성격이 적극적이고 영어도 유창하여 스페인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하였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김혁철 대사가 스페인 언론, 엘카노 연구소 등 학계를 대상으로 행한 인터뷰 기사와 동영상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김혁철 대사는 교육과 관광 분야 교류를 위해 노력하였는데, 네브리하(Nebrija) 대학과 협약을 맺어 북한 유학생 10여명이 공부하고 있었다. 관광 분야에서는 마드리드 소재 세계관광기구(UNWTO)와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협력을 추진하였고, Taleb Rifai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국제사회의 제재하에서 외국 관광객 유치를 통해 외화를 획득하려는 시도가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스페인 정부의 규탄과 경고가 계속되자, 김혁철 대사의 활동도 점차 위축되어 갔다고 한다. 급기야 스페인 정부는 2017년 8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2등서기관을 추방하였고, 9월 제6차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김혁철 대사 마저 추방하여 버렸다. 이후 북한대사관은 3등서기관 1인 공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2017년 9월에 스페인을 떠났던 김혁철 대사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실무협상 대표로 나타났다. 북한 TV에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 나타난 사람은 김혁철 대사가 맞았다. 자신은 실무협상 대표로 나타났는데, 같은 시기에 자신이 일했던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은 자유조선의 습격을 받고… 우연이겠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극적인 것 같다. 김혁철 대사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혹자는 회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처형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알 길은 없다. 김혁철 대사가 갑자기 등장했던 이유도 미스테리이지만, 아무리 능력이 출중했어도 권한없는 실무자가 그 상황에서 회담을 성공시키기 불가능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스페인에서 북한 이야기를 할 때 알레한드로 카오(Alejandro Cao de Benós) 북한친선협회(KFA)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카오는 북한친선협회가 세계 60개국에 1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친북활동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된다. 카오는 북한인민군 군복을 입고 행사에 자주 참석하며, 과거에는 연간 4-5차례 북한을 방문한 열렬한 친북인사이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특별대표로 임명받아 활동하였으나, 2016년 7월 불법무기 소지로 체포되어 출국 금지를 당한 상태이다. 2020년 10월에는 덴마크 방송국이 제작한 잠입 다큐멘터리인 두더지(The Mole)가 방영되어, 카오와 KFA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카오는 자신에게 국제무기밀매단으로 위장하여 접근한 출연자에게 북한의 비밀 무기 제조와 밀수 네트워크를 노출시키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북한이 카오에게 어떠한 조치를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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