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도 스페인에 한국 문화를 알리려는 다양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2018년 시작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와의 한국 클래식 음악회에는 4.11 손민수 한예종 교수(2006년 캐나다 호넨스 콩쿠르 우승자)와 11.6 15세의 유망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이 스페인 청중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한국과 스페인의 문화를 접목한 작품 공연도 계속 되었다. 5.22 La Abadia 극장에서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만남’이 개최되었는데, 이날 스페인 청중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각자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소리를 조화롭게 만들어 내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가 초청한 Josep Piqué 전 외교장관 내외는 한국과 스페인이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
6.27에는 김복희 무용단이 스페인의 국민 시인이자 극작가인 Federico Garcia Lorca(1898- 1936)의 비극인 ‘피의 결혼(Bodas de Sangre)’을 한국적 미학으로 재해석한 무용극을 코로도바 대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이밖에 6.8 안은미 무용단의 남부 카디스 공연, 10월 북부 오비에도 한국문화주간 등 지방에서의 문화행사 개최 노력도 계속하였다. 6.29 개최된 K-Pop 페스티벌에서도 스페인 젊은이들의 K-Pop에 대한 열정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앞선 Episode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날 1등을 했던 The Brats가 창원 본선에 진출을 했다. 스페인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공연 장르도 다양해져 6.17 Figaro 극장에서 개최된 ‘그때 변홍례’라는 1930년대 시대를 배경으로한 연극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의 결과 12.14 아시아-유럽(ASEM)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개최된 ASEM Cultural Festival에서 한국 풍류 팀이 초청을 받기도 하였다. 이제는 옛날처럼 관객이 많이 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
여러 행사들중에서 3가지가 가장 기억이 난다. 먼저 7.16 마타데로(Matadero) 문화센터에서 터키대사관과 영화 ‘아일라(Ayla)’ 상영회를 공동으로 개최한 일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 참전 터키 군인이 전쟁터에서 구조하여 전쟁내내 막사에서 친딸처럼 키운 한국 전쟁 고아(Ayla)와 귀국시 어쩔수없이 헤어지고, 평생을 수소문 끝에 60년후인 2010년 재회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터키 작품이다. 2017년 개봉후 터키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후보에 까지 올랐다고 한다. 7.19 스페인 개봉을 앞두고 Cihad Erginay 터키 대사의 제안으로 공동으로 개최하게 된 것이다. 한국전을 잘 모르는 스페인 관객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두사람의 감동적인 인간 스토리, 이를 통한 두나라의 형제와 같은 유대를 잘 보여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사람들도 감정이 풍부한 것 같았다.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고, 영화가 끝나자 너나 없이 힘찬 박수로 감동을 표시하였다.
두번째 행사는 10.24에 개최한 영화 ‘기생충’ 시사회였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는데, 홍다혜 서기관이 스페인에서도 10월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보고하였다. 스페인 상업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가 개봉되는 것은 흔치 않아 무척 기뻤고,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개봉일 전날에 각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시사회를 갖는 것이었는데, 스페인 배급사 La Aventura도 대사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이 배급사는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였고 한국 영화가 스페인에서 흥행에 성공할 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생충의 수입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였다. 필자는 펠리페 6세 국왕의 방한 수행을 위해 일시 귀국했던 관계로 시사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참석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10.25 63개 영화관에서 개봉되었던 기생충은 2020년 2월 10일 아카데미상 수상 직전에 143개 영화관으로 확대되었고, 관객수는 46만명에 달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에는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고, 2.26 관객수 백만명을 돌파하였다. 3.2에는 와호장룡을 제치고 스페인 개봉 아시아 영화 1위에 올랐고,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인 3.8에는 350개의 상영관에서 누적 관객수가 125만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깡통에 담긴 감자 칩이 Bonilla a la Vista라는 스페인 갈리시아 제품이라 스페인 방송에서 뉴스로 많이 보도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행사는 2014년 제네바 콩쿠르와 2015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문지영 피아니스트가 12.2 국립음악원에서 마드리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송년 음악회였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였는데, 연주가 끝난 후 2,300석의 좌석을 꽉 채운 스페인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고 느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