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24간 펠리페 6세 국왕내외의 방한이 끝난 후 한국에서 며칠간 휴가를 가지고 10.31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당장 큰 행사 3개를 연이어 준비해야 했다. 11.12 ‘스페인 산업 4.0 국제회의’ 주빈국 참가, 12.16 강경화 외교장관의 ASEM(아시아유럽회의) 외교장관회의 참석, 2020년 1월말 마드리드국제관광박람회(Fitur) 주빈국 참가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행사가 하나 더 생겼다. 스페인 정부가 칠레 정부가 취소한 25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5, 12.2-13)를 대신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2019년에는 중남미에서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부패 및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온두라스, 아이티, 페루,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로 연속적으로 확산되었다. 급기야는 중남미의 가장 모범국으로 생각되었던 칠레에서도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을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되었다. 10.14부터 시작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피녜라(Piñera) 대통령은 10.30 APEC 정상회의와 COP25 개최를 취소하게 된다.
직원들의 업무를 잘 조정하여 동시다발적으로 행사들을 준비해 나갔다. ‘스페인 산업 4.0 국제회의’에는 최기영 과기정통부장관이 막 취임했던 상황이라 참석이 어려웠고, 민원기 차관이 정부대표로 참석하였다. 민원기 차관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이사회 의장, OECD의 정보통신서비스 분과위원회, 디지털경제정책위원회, 인공지능전문가그룹 의장을 역임하여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과학기술 분야의 정통 관료로서 이번 회의의 정부대표로 적임이었다. 민원기 차관과 함께 석제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과 기업대표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참석을 했다.
‘스페인 산업 4.0 회의’는 스페인 정부가 산업 4.0 정책을 확산하기 위해 2017년 시작한 행사이다. 2018년까지 국내행사로 개최되었으나, 2019년부터 국제행사로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의 주빈국 참가 의향을 필자가 막 부임한 2018년초에 대사관에 문의했던 것이다. 필자는 2018년 9월에 개최된 제2차 회의 참석과 Raul Blanco 산업차관과의 면담을 통해 한국의 참가가 한-스페인 경제협력을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분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과기정통부에 한국의 참가를 건의하였고, 1년 이상의 설득과 스페인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참가를 확정지었다. 유영민 장관에게도 2번 이나 직접 요청을 드렸고, 10.23 한-스페인 정상회담 결과도 큰 도움이 되었다.
행사는 마드리드박람회장(IFEMA)에서 개최되었다. 개막식에 앞서 Reyes Maroto 산업통상관광장관, Raul Blanco 산업차관, Francisco Polo 경제기업부 디지털차관, Maria Pena 무역투자진흥청(ICEX) 대표, Clemente Gonzalez Soler IFEMA 회장, Eduardo Lopez Puertas IFEMA 사무총장이 대기실에서 함께 모여 우리측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는 펠리페 6세의 방한 결과와 한국의 5G 상용화 현황 및 양국간 협력방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행사장은 1,400여명의 정부, 단체, 기업 관계자들로 꽉 차있었다. Maroro 장관의 개막사에 이어 민원기 차관이 기조연설을 하였다. 민원기 차관은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다양한 변화를 현실감있게 조망하면서, 한국의 5G+ 전략,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소개하여 청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어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민원기 차관, 석재범 원장, Raul Blanco 산업차관, Francisco Polo 디지털차관, Maria Pena 무역투자진흥청(ICEX) 대표가 산업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경제에 대한 양국의 정책과 경험을 상세히 공유하였다. 청중들도 한국정부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였다.
한편, 삼성전자는보안 솔루션 Knox를, 현대자동차는 수소경제와 수소차 Nexo를 각각 홍보관에 소개하고, 별도의 발표 세션도 개최하였는데, 많은 참관객들이 찾아와 인기를 끌었다. Maroto 장관과 민원기 차관 등 양측 관계자들도 기업 홍보관을 둘러 보았는데, Maroto 장관이 Nexo에 시승해 보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수소차는 필자가 아이디어를 내어 현대자동차에 요청하였는데, 스페인 청중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Maroto 장관과 민원기 차관은 별도의 회담을 갖고 4차산업 혁명 관련 양국간 실질협력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세계 13개국에서 3억 5천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글로벌 통신기업으로 스페인 최대의 스타트업 육성 기업이기도한 Telefónica와의 중남미 공동진출 협력방안도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
이번 행사의 최대 성과는 1,400여명의 스페인 정부, 단체, 기업 관계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4차산업혁명 정책과 경험을 직접 소개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양국이 한층 가까워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야에서 양국 기업들은 2018년 삼성전자의 Zhilab(AI 활용 네트워크 품질 분석 스타트업) 인수에 이어, 2021년 네이버의 Wallapop(중고물품 거래 플랫폼) 투자 등 조금씩 협력을 시작하고 있다. KOTRA는 한국 스타트업을 Telefónica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 입주시키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2021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국빈방문에서는 산업 4.0 협력 MOU와 스타트업 협력 MOU가 체결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의 원동력으로 한-스페인 양국간 디지털 경제 협력이 구체적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