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정부의 갑작스러운 COP25 개최 취소와 스페인 정부의 대체 개최 발표 이후 본부로부터 지시가 왔다. 총회 기간중(12.2-13) 우리 대표단 80여명이 묵을 호텔을 예약하라는 것이었다. 세계 197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회의가 한달을 앞두고 개최지를 변경하였으니, 관계자들은 모두 혼란스러워 했을 것이다. 직원 보고에 따르면 마드리드의 주요 호텔들은 120개가 넘는 외국 대사관들의 문의로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대사관은 다행히 Meliá Castilla 호텔에 예약할 수 있었는데, 2019년에 동해표기 담당관회의 등 각종 행사 개최를 통해 구축된 인연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유연철 기후변화대사를 비롯한 관계부처 실무단이 도착하여 준비에 들어 갔다. 필자는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12.2 개최된 개막식에는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행사장은 얼마전 ‘스페인 산업 4.0 국제회의’가 개최된 마드리드박람회장(IFEMA)였다. 불과 한달만에 대규모 국제회의를 준비한 스페인의 능력이 대단하였다. 행사장에 들어 가니 유연철 대사가 한국 대표석에 같이 앉자고 하여 함께 개막식을 보았다. 개막식은 총회 의장인 Carolina Shmidt 칠레 환경부장관이 주재하였다. 개최지는 마드리드로 변경되었지만 총회 의장은 칠레의 환경부장관이 계속 맡고 있었다. Pedro Sanchez 총리, 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 Patricia Espinosa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사무총장이 차례로 연설을 하였는데, 마지막으로 한국인이 기후변화 보고연설을 하였다.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이었다.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유연철 대사는 금번 총회의 최대 목표는 국제탄소시장 지침을 타결하여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의 이행에 필요한 17개 이행규칙을 모두 완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16개 이행규칙은 합의가 되었으나, 탄소시장 이행규칙만 선진국-개도국, 잠정 감축분 판매국-구매국간 입장이 대립하여 합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협정보다 높은 새로운 탄소배출량 기준을 정하는 문제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12.5에는 호텔에서 실무대표단을 위한 만찬을 개최하여 앞으로 8일을 더 수고할 대표단을 격려하였다. 12.11에는 조명래 환경부장관을 모시고 관저에서 만찬을 하였다. 대표단으로 함께 온 김정욱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 정래권 대사(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 최재철 대사( 기후변화센터 자문), 황석태 환경부 국장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모두들 환경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총회는 예정일보다 이틀을 넘겨 12.15에 폐막되었다. 최대 쟁점이었던 국제탄소시장 이행규칙은 이번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다음 총회로 넘겼다고 한다.
다음날인 12.16에는 ASEM(아시아·유럽회의) 외교장관회의가 엘파르도 왕궁(Palacio de El Pardo)에서 개최되었고, 강경화 외교장관은 12.15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이에 앞서 김필우 유럽국장이 12.12에 도착하여 외교장관회의 준비를 위한 고위관리회의(SOM)에 참석하고 있었다. ASEM도 회원국이 53개국이고 COP25와 기간이 중복되는 부분도 있어, 숙소, 대표단 숫자, 차량 등 준비에 있어 많은 제한이 있었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로 한-일 양국관계가 악화되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양측간 대화도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래서 ASEM 외교장관회의 기간에 양국 외교장관간 접촉이 추진되었는데, 양국 장관의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고 체재 기간도 짧아 장소와 시간 합의가 쉽지 않았다. 결국 강경화 장관과 모테기 외상은 12.15 저녁 프라도 미술관에서 개최된 환영만찬에서 만나 별도의 회동을 했다.
강경화 장관은 12.16 “효율적인 다자주의를 위한 아시아와 유럽간 협력” 제하의 첫번째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였고, 업무오찬에서도 우리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축 노력을 설명하고 ASEM의 지원을 당부하였다. 후일에 Ana Sálomon 외교부 국장은 필자에게 강경화 장관의 발언이 내용 뿐만 아니라 영어의 전달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2.16 저녁 늦게 외교장관회의가 끝나고 관저에서 강경화장관과 대표단을 모시고 만찬을 함께 했다. 빡빡한 일정에 많이 피곤하실텐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직원들을 격려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 특히 처음 만나는 대사관의 젊은 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셔서 직원들이 좋아 하였고, 필자도 직원들로부터 점수를 땄다. 강경화 장관은 12.16 아침 일찍 출국을 했다. 영송을 위해 마드리드 공항 귀빈실에 도착하니, 옆방에 최근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자리를 옮긴 Josep Borrell 전 외교장관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강경화 장관께 안내를 했다. 강경화 장관은 전날 회의장에서 너무 바빠 별도로 환담을 하지 못했는데, 공항에서나마 인사를 나누어 좋았다고 필자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큰 행사를 마치고 대표단을 공항에서 떠나보내고 돌아오면 항상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12.17은 더욱 이런 마음이 들었다. 2019년에 유난히 행사가 많았고, 이것이 마지막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차분히 한해를 정리하면서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