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국제관광박람회(Fitur)가 끝나고 10일후인 2월 5일에 펠리페 6세 국왕이 주최한 외교단 신년하례식에 참석하였다. 이번에도 아내와 함께 한복을 입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국왕 내외는 먼저 말을 하면서 한결 따뜻하게 필자 내외를 반겨 주었다. 왕관의 방(Salon de Trono)에서 행한 연설에서 펠리페 6세는 수교 70주년을 맞아 작년 10월에 한국을 방문한 사실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번 하례식은 Pedro Sanchez 총리가 새로이 정부를 구성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새로이 임명된 Arancha Gonzalez Laya 외교장관, Cristina Gallach Figueres 외교차관, Manuel Muniz 국제위상차관과 인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필자는 얼마전 스페인측에 제의한 문재인 대통령의 5월 스페인 방문에 대한 스페인측의 수락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Gonzalez Laya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의 신임 수뇌부들이 아직 내용을 모르고 있어 일일이 설명을 하면서 조속한 검토를 부탁했다. Alfredo Martinez Serrano 왕실 의전장은 현재 왕실이 검토중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2월 중순경 스페인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겠다는 답변을 공식적으로 통보해왔다. 먼저 일정과 내용에 대한 골격을 검토했다. 국빈방문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공식환영식(왕궁), 국왕내외 환담(Zarzuela궁), 국빈만찬(왕궁), 정상회담(Moncloa궁 총리 관저), 상하원합동연설, 마드리드시청 방문(황금열쇠 증정)외에 비즈니스포럼, 동포 간담회 등 추가 일정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중요하였다.
내용적으로는 한-스페인 양국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였다. 지난 70년간 제분야에서 발전해온 협력과 교류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양국관계가 한차원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 이제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식적으로 설정할 때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에 대한 공동선언문에 합의하여 서명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펠리페 6세 방한시 제시된 양국간 미래협력 과제의 실행을 구체화하기 위해 산업 4.0 협력 양해각서, 스타트업 협력 양해각서(디지털경제), 청정에너지 협력 양해각서(그린경제) 체결을 추진하고, 양국이 문안에 합의한 세관상호지원 협정도 서명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본부와의 협의를 거쳐 Caridad Batalla 의전장, Ana Salomon 북미동유럽아태국장, Cristina Serrano 국제경제국장, 그리고 스페인 관계부처들과 열심히 교섭 활동을 하였다. 2.25에는 권평오 KOTRA 사장이 스페인을 방문하여 Xiana Mendez 통상차관과 경제행사와 비즈니스포럼 문제를 협의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다가 오고 있었다. 2.12에는 GSMA(세계이동통신 사업자연합회)가 2월말 바르셀로나 MWC 개최를 취소한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이 MWC의 최대 참가국인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한국과 스페인에서는 소수의 확진자만 나와 큰 문제가 없는듯 보였다. 그런데 2.18 한국에서 대구 신천지교회의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의 상황을 걱정하고 중국인과 함께 한국인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보였다.
그러나 2.21부터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코로나 19가 확산되어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후에 스페인에서도 3.9 누적 감염자가 1,231명으로 증가하였고, 3.13에는 5,232명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웃국가인 이탈리아의 확산에도 직항 항공편을 계속 운행하는 등 안일하게 대응했던 스페인 정부는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휴교령도 소용이 없자 결국 3.14 국가경계령을 내리고 전국에 강력한 봉쇄령을 발동한다. 문재인 대통령 방문은 더이상 추진할 수가 없게 되었고, 양측은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추진하기로 하였다.
3.24 문재인 대통령과 Pedro Sanchez 총리는 전화 통화를 갖고,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제 코로나 19 대응으로 상황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방문 연기는 필자의 스페인 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펠리페 6세의 방한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방문으로 양국 수교 70주년을 최상의 외교를 통해 기념하고, 양국간 협력과 교류의 모멘텀을 더욱 살려 나갈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대사 재임중에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이 이루어지는 것은 큰 영광일 수 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이 지난 후인 2021년 6월에 스페인을 국빈방문하였다. 필자가 이임한 후이긴 하지만,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이 이루어진 것은 양국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분위기가 침체되고 경제가 어려워진 스페인으로서는 한국과의 디지털, 그린, 관광 협력을 크게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문 성과도 필자가 계획했던 것이 모두 반영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방문이 끝난후 Juan Ignacio Morro 주한 스페인대사가 필자에게 전화를 해 왔다. “전대사가 이번 방문에 실제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반은 참가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신이 작년에 전대사와 함께 계획했던대로 이번 방문이 이루어졌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