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는 6.21 국가경계령을 해제하고 뉴노멀 시대 진입을 선언하였다. 정상으로 돌아 왔으나 코로나 19 발생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방식이라는 의미의 이 용어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1.5미터 사회적 거리 유지,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장려, 직장, 학교, 상점, 호텔 등에서 인원수 제한, 코로나19 조기 경보 체제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지난 3개월간 집 밖을 나오지 못했던 봉쇄 생활을 생각하면, 이정도라도 살만 했다.
산체스 총리는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 들이고, 5차례에 걸쳐 2,200억 유로의 긴급경제지원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필자가 관심을 가졌던 사안은 유럽연합(EU)의 경제회복기금 합의를 위한 협상과정이었다. 이 사안은 EU의 내부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회원국들이 처음에는 분열하였으나 합의를 통해 다시 연대를 결속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EU는 4.9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기존의 틀내에서 총 5,400억 유로의 코로나 19 대응 패키지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이 기존의 틀 이상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였다. 유로존 공동채권(코로나 본드) 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여 회원국들에게 무상으로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들 국가는 2010년 재정위기시 EU의 지원이 신속하고 충분하지 못했다고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검소한 4개국(Frugal 4)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다른 회원국들의 채무를 떠안을 수 없으며 무상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EU의 양대 축인 프랑스 마크롱 총리와 독일 메르켈 총리가 나서 무상지원 5,000억 유로 조달 방안을 제시하였다. 레이언 EU 집행위원장은 무상지원 5,000억 유로, 대출 2,500억 유로를 제안하였다. 6.19 화상회의에서 진전이 없자, 정상들은 7.17 브랏셀에 모여 5일간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네덜란드 루트 총리와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가 무상지원에 강력히 반대하였고, 이에 이탈리아 콘테 총리가 강하게 반발하고 산체스 총리도 지원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양 진영은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미셀 EU 정상회의 의장의 중재안(무상지원 3,900억 유로, 대출 3,600억 유로)을 받아 들였다. EU 역사상 최초의 무상지원이 합의된 순간이었다.
필자의 외교활동도 주로 화상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서울과는 7.7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주재 UNESCO 집행이사국 주재 공관장회의, 7.9 강경화 외교장관 주재 재외공장회의가 있었다. 스페인측과는 6.10 Marta Llaguno 하원 외교위원회 의원 면담, 6.11 Bonet 스페인 상공회의소 회장 면담, 7.7 제21차 한-스페인 민간경협위 회의, 8.12 스페인주재 아태지역대사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였다.
코로나 19 대응 협력과 관련해서는 4월부터 시행해온 스페인 보건부와의 정보공유를 계속했다. 6.23에는 스페인 적십자 중앙병원에 한식 도시락을 보내 의료진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특히 7.12에 지방선거를 실시하는 갈리시아주와 바스코주에는 우리의 4.15 총선 방역 경험 정보를 제공하였다. 선거후에 Alberto Núñez Feijóo 갈리시아 주지사와 Iñigo Urkullu 바스코 주지사가 필자에게 편지를 보내 사의를 표명하였고 추후에 꼭 방문해달라는 뜻을 전해왔다.
조금씩 대면 행사도 개최되기 시작했다. 7.6에는 헌법재판소 창설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다. 초청자 확인, 체온 측정, 손 소독 등의 방역 절차가 있었고, 모두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되었다.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봉쇄가 해제된 후 처음으로 Juan José González 헌법재판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펠리페 6세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7.14에는 Javier Parrondo 아시아교류재단(Casa Asia) 원장을 만났고, 7.20에는 Leticia Pico de Coana 문화과학협력국장(대리)과도 면담을 가졌다. 7.22에는 Alberto Rubio The Diplomat 편집장을 만났고, 7.24에는 새로 부임한 Sofia Ross Mcintyre호주대사의 방문을 받았다.
코로나 19의 와중에서도 스페인의 기술기업인 Indra가 한국공군기지 관제시스템사업에서 미국기업을 이기고 700억원 규모의 입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대사관이 Indra 협상팀의 한국 비자와 격리면제서를 여러차례 발급하는 등 지원을 했다. 입찰후 담당 이사가 대사관에 감사의 뜻을 전달해 왔다.
7월에는 아내와 여름 휴가도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초입에 있으며 ‘황소몰이’ 행사로 유명한 팜플로나에 갔다. ‘황소몰이’로 알려진 산페르민 축제는 매년 7.6-14 열리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개최되지 않았다. 축제는 보지 못했지만 Santo Domingo 우리에서 시작하여 Mercadero 커버, Estafeta(폭이 가장 좁은 곳)을 거쳐 투우장에 이른는 849m 구간을 걸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호텔도 방역이 엄격했으며, 아침 식사도 종래의 부페에서 직원이 쟁반에 담아 가져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Roncesvalles, Puente de la Reina 등 순례길의 나바라지역 구간을 돌아 보고, Logroño를 거쳐 스페인의 최대 포도주 생산지인 La Rioja로 갔다. 많지는 않지만 순례객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이 지역의 5대 Bodega(Winery)의 하나인 Marqués de Riscal에 있는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이 호텔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Frank Gehry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
8월에는 한-스페인 수교 70주년 기념책자 발간을 위한 마지막 작업에 주력했다. Juan Ignacio Morro 주한대사와 스페인한국연구소(CEIC)와 협의를 계속 진행하였다. 홍다혜 서기관이 스페인어-한국어 번역 검수, 책자 디자인, 인쇄를 위해 진력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교 기념행사가 모두 취소되었지만 기념책자 발간식은 반드시 대면으로 개최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