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스페인을 떠나는 귀국 항공권을 예약했다. 11.29(일) 아내와 함께 마드리드 시내에 마지막 나들이를 갔다. 늦 가을에 하늘도 흐려 약간 쌀쌀한 날씨였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일까? 3년 동안 다녔던 장소들인데도 기분이 새롭다. 왕궁과 알무데나(Almudena) 성당 앞. 작년 성주간(Semana Santa)에 성당을 출발하는 예수 행렬을 보려고 군중 속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생각이 났다. 대광장(Plaza Mayor)으로 가니 벌써 크리스마스 나무와 장식을 파는 시장이 들어 섰다. 옆에는 전통시장을 리모델링한 산미겔(San Miguel) 시장이 있다. 각종 타파스를 먹을 수 있는 장소로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주위 옥외 테이블에서는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 겨울에는 따뜻한 추로스와 커피를 먹곤 했다. 솔 광장(Puerta del Sol)으로 가는 길에 플라멩코 공연장(Tablao)이 보인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크 가게인 라 마요르키나(La Mallorquina)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솔 광장에는 카를로스 3세의 동상 옆 분수대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다. 12.31 밤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마드리드 주정부 청사 시계 탑에서 나는 12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12알의 포도를 먹으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북쪽으로 그란 비아(Gran Vía)로 이동하여 까야오 광장(Plaza de Callao)에서 맥주 한잔을 했다. 동쪽의 시벨레스(Cibeles) 분수로 가서 마드리드 시청, 스페인 은행, 세르반테스 문화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좀 더 내려가면 있는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티센 미술관도 많이 다녔던 장소중의 하나이다. 세 곳 모두 한국어 음성 서비스가 설치된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늦가을의 레티로(Retiro) 공원과 크리스털 궁전도 둘러 보았다.
저녁은 트레스 마레스(Tres Mares) 식당에서 했다. 삼면의 바다(three seas)라는 뜻의 해산물 식당인데 필자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으로 단골이었다. 서민적인 식당이지만 맛은 최고였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이 식당에 초대를 많이 했는데 모두 만족하였다.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 가자 주인이 반갑게 인사한다. 직원들도 이제 모두 아는 사이가 되었다. 늘 주문하던 가리비(zamburiña), 문어 구이(pulpo a la plancha)와 알바리뇨 화이트 와인(Martín Códax)을 주문했다. 항상 그랬듯이 주인이 새우와 토마토 소스 빵을 서비스로 가져 오면서 안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식사는 랍스터 밥(Arroz con Bogavante)를 시켰다. 보통의 빠에야(Paella)와는 달리 이 음식은 밥이 죽같이 걸쭉한데 맛이 참 좋다. 식당 주인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관저로 돌아 와서 아내와 지난 3년을 회고했다. 7번째 해외생활을 함께 마치는 것인데 아내는 항상 필자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2020년에는 오십견이 재발하였으나 코로나 상황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인 11.30(월) 대사관에서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직원들이 필자와 아내를 위해 송별식을 준비했다. 임웅순 공사, 이창원 서기관, 김보령 실무관, Daniel de Pablos 연구원이 필자와 함께 했던 시간을 회고하는 송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필자의 스페인 생활 3년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 주는데,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직원들이 부족한 필자를 믿고 따라주었기에 맡은 소임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직원들이 너무 고맙고 이런 직원들을 만난 필자가 복이 많았던 것 같다.
임웅순 공사, 박내천 공참, 조기중 공참, 변정일 무관, 조충경 서기관, 이창원 서기관, 이영수 서기관, 홍다혜 서기관, 신혜민 영사, 김승철 영사, 성은지 서기관, 탁영찬 서기관, 오지훈 문화원장, 안영주 KOTRA 관장, 강명재 부장, 남선우 차장, 그리고 시윤경, 김보령, 나예원, 김현정, 박난영, 고한울, 정기훈, 이우석, 이정희 등 모든 실무관들과 Daniel, Mercedes, Jesus, Enrique, Ysabel, Wilfredo, Jerónimo(KOTRA), 문화원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전에 필자와 함께 일했던 김대환 서기관, 고일권 무관, 유지한 서기관, 최종욱 공참, 민보람 서기관, 유승주 참사관, 배영기 영사, 황인용 서기관, 류재원 KOTRA 관장, 심재상 차장, 이종률 문화원장도 생각난다. 지금은 대부분 국내외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 일하고 있다.
차량에 탑승하는 필자를 직원들이 현관에서 배웅하였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타려는 순간, 갑자기 조충경 서기관과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힘차게 “인생은 60부터!”라고 외쳤다. 필자가 스페인을 이임한 후 곧 정년퇴직을 하기 때문이었다. 젊은 후배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필자에게 이렇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12.1(화) 암스테르담 경유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부임할때와 달리 주 4회 운항했던 마드리드-인천 직항이 중단되어 아쉬웠다. 임웅순 공사 내외가 공항에 나와 배웅을 했다. 임공사도 뉴욕으로 발령이 났는데, 고맙게도 필자를 먼저 보낸다고 떠나는 것을 조금 미루었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외교관의 삶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