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현 에디터] #2 가만히 있으면 중간도 못간다.

[최소현 에디터] #2 가만히 있으면 중간도 못간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도 못간다

안녕하세요! 본격적으로 스페인어게인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최소현입니다! 

 

앞으로 제 포스팅들이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2-30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얘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조용히 주어진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기"

한국에서 21년간 공부하면서 배운 철학(?)이다. 일명 나대지 말기. 어른들에게 대들지 말고, 학교 수업 시간 중에 질문은 하지 말고, 학교에서 불공정한 상황이 생겨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생활기록부에 좋다고 주변 모두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에너지에 가득 차 언제든 궁금증과 반항심에 불타오르던 내게 부모님은 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며 날 진정시키셨다. 그렇게 학교와 가정에서 오랜 시간 충돌과 갈등을 거쳐 나는 어디서든 예의 바르고 착한 학생이자 딸이 되었다.

 

그렇게 성숙한 어른의 마음가짐이라며 칭찬받던 나의 모습은 스페인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이 포스팅이 끝날 때 독자 분들이 조금 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 스페인 학생 장기비자 발급

다른 나라들에 비해 스페인은 비자를 준비하기 귀찮은 나라로 주목받는다. 특히 비자를 처음 준비하시는 분들이 스페인 비자 발급 절차를 검색해본다면, ‘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갈 정도이다. 처음 해보는 비자 발급과 건강진단 및 비자신청을 다녀오기 번거로운 거주 지역, 소득증명서와 재정증명서 조건에 못 미치는 부족한 자금까지. 스페인에 가지 말라는 하늘의 뜻처럼 느껴질 만큼 절차마다 문제가 생겼었다. 마침내 수십번의 확인 끝에 왕복 12시간에 걸쳐 스페인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이 완료되었을 때는 너무 행복했다.

 

(*학생 장기비자 신청에 대한 절차 과정은 아래 제 블로그 링크를 통해 참고해주세요! :) )

https://blog.naver.com/treamingproject/221313503773

 

스페인 1년을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3주를 기다렸더니, 대사관 홈페이지에 비자 발급이 되어 가지러 다시 방문하였다. 확인번호를 드리고, 기쁜 마음에 받으려는 순간 비자 발급을 해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스페인 입학 허가서가 원본이 아니라, 스캔본이라고 했다. 뒤통수 여러 군데 맞는 기분에 DHL을 통해 학교에서 직접 수령했다고 설명하며, 스페인과 한국 학교 모두가 내게 원본이 맞다고 보내준 이메일을 보여주었지만, 대사관은 스캔본이라고 딱 거절하였다.

 

 

너무 단호한 모습에 ‘아 정말 안되는구나..’하고 울먹거리며 다시 6시간에 걸쳐 집에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했다고 생각했고, 각 학교에 연락을 취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만 있었다. 비행기 출국일은 1-2주를 남기고 있었고, 착하고 정중하게 기다리니 아무것도 달리지는 게 없었다. 미쳐가던 나는 스페인과 한국 학교 모두에게 당장 대사관에 직접 confirmation letter를 보내라고 압박을 남기고, 스페인 대사관에도 엄마와 함께 하루에 15번은 전화를 걸었다.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지 않아도 아랑곳 않고 이메일을 확인해라며 닦달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며 비자 발급을 완료해 주었다.
조금 후회가 남는 것은 그 당시에 조금만 더 오기를 가지고 설득과 압박을 가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할 때도 있다. (웃음)

2. 스페인 성추행과 엠빠드로나미엔또

학생 장기비자 다음은 TIE 발급. 본격적으로 스페인어 난관에 부딪히는 단계였다. 우선 집을 구해야 해서 IDEALISTA 사이트를 통해 Lavapies, Embajadores, Palos de la frontera 역 근처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시내 중심에서 거주하고 싶다면, 이 역 근처들이 가장 편리한 것 같아요! 마드리드 중심인 Sol 과 도보 10-15분이자, Sol만큼 집값이 비싸지 않으면서 지하철 3호선이라 지하철도 빨리 오고, 정류장도 많아요! 6호선 같은 경우는 지하철이 아주 깊숙하게 위치해 있어 밑으로 약 계단 1번, 에스컬레이터 3번을 거쳐야 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와이파이와 통신이 역마다 끊기는 것도 당연한 일!)

 

40 차례의 왓츠앱으로 방 문의 이후, 5인 플랫의 425유로 방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오후 12시에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찾아갔다. 역시 스페인 2-30분 연락두절 지각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같은 시간에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조급해진 마음에 방이 크고 나쁘지 않다는 판단 하에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함께 집을 계약한 영국인 친구의 능숙한 스페인어 덕분에 계약서를 확인하고, 엠빠드로나미엔또(거주지 증명서) 발급이 가능한지를 수차례 확인한 후 5개월 계약을 맺었다. (내가 조사했을 때는 6개월부터 엠빠드로나미엔또가 신청 가능하다고 했는데, 집주인이 5개월씩만 계약이 가능하고, 5개월로도 발급이 가능하다는 보증을 수차례 얻고 결정하게 되었다.)

캐리어 2개를 끌고 온 나는 새로 들어 올 4명의 룸메들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함께 계약한 영국인 친구는 10일 뒤에나 입주한다고 하였고, 나머지 3방은 아직 빈 방이었다. 그렇게 10일을 낮밤으로 혼자 지내며 어두컴컴한 집 복도를 항상 무서워하며 잠 들었다. 그렇게 매일 오후 12시마다 집주인은 사람들에게 남은 방들을 보여주었고, 그 때마다 뚱뚱한 집주인 할아버지는 내 방문을 벌컥벌컥 열며 불쑥 들어오기 일쑤였다. 내 손을 붙잡고 껴안고 볼을 부딪힐 때마다 흠칫 놀라는 내게 이것이 스페인 문화라며,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웃어넘겼다.

 

중국 3주 캠프가 인생에 해외경험 전부였던 나는 정말 그런가 싶었고, dos besos를 미리 알고 오니 더 혼란스러웠다. 문제는 점점 더 노골적인 눈길과 추파였다. 오전 11시 반에 잠옷을 입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을 시작으로 급기야 손을 내 옷 안으로 넣어 허리를 만지려고 하였다. 처음 당해보는 성추행과 이제서야 이게 유럽의 문화나 인사 따위가 아닌 것을 알게 된 나에 대한 한심함, 그리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 거대한 몸집의 할아버지가 매일 내가 혼자 사는 집에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는 상황이 너무 두려웠다. 손을 뿌리치고 영어도 스페인어도 한국어도 갑자기 나오지 않는 충격에 ‘No, No’만 외치는 나를 집주인은 피식 웃고 두 손을 들며 나갔다.

 

그 다음날, 엠빠드로나미엔또 신청 예약 날짜가 되어 센터에 찾아갔다. 어쩐지 아보노 카드, 유심칩 등 일이 좀 순탄하다 했다. 6개월 이상부터 거주지 증명서 신청이 가능하고, 꼭 집주인과 함께 오거나 집주인의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미 계약서와 보증금은 다 지불한 상태, 집주인에게 왓츠앱으로 자초지종 설명하니 ‘It’s not my business’ 한 문장의 답장이 전부였다.

 

펑펑 울며 구글 검색과, 바르셀로나와 말라가 펜팔 친구,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명 모두 설명해 도움을 청했다. 딱히 정보 없는 구글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친구들, 대사관에서도 당황한 채로 ‘선생님께서도 확인을 제대로 못한 잘못이 있으세요. 지금 당장 방법이 없으니 집주인을 잘 타일러서 해결해보세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엉엉 울며 집주인과 무서워서 둘이는 못 있겠다며, 방법이 없냐며 부탁하니 일단 주변에 친구가 있다면 집주인과 셋이 만나고, 더 찾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 이후에 다시 연락을 받지는 못했다. 만약 내가 연락만 가만히 기다렸다면, TIE 신청 날짜를 놓치거나 보증금도 못 받은 채로 새 집을 찾아 다시 보증금과 집세를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네이버 스페인짱 카페에 무작정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글은 순식간에 구독수가 올라갔고, 댓글과 쪽지를 통해 많은 응원과 조언, 그리고 절실한 도움을 받게 되었다. 스냅 작가와 도슨트를 하시던 한 언니분께서는 집에 방이 몇 개 있다며 내 거주지 증명서 작성을 도와 주시고, 직접 센터에 함께 방문도 해주셨다. 그분을 만나 정말 많은 조언과 팁을 얻고 그렇게 무사히 TIE 신청을 할 수 있었다.

3. 학교 코스 리스트

보통 교환학생을 떠올리면 외국 문화 체험 + 가벼워진 학업 지속을 얘기한다. 교환학생 팁을 얘기해주었던 학교 선배들도 교환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손해라고 조언해주었는데.. 내가 지원한 스페인 마드리드 ESIC Business & Marketing School 대학은 비자 발급 확인 메일을 보내니, 갑자기 급격하게 변동된 코스 리스트를 보내 주었다. 나는 1학년만 마치고 지원했기에, 1-2학년의 기초 필수 및 교양 과목 이수가 필요하였다. 학교에서 이수 가능한 과목들을 비교하며 지원했던 것인데, 갑자기 4-5학년의 세부 전공 과목만 이수가 가능하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원래부터 변동이 많다며, 이수할 과목 계획서를 제출해라고 답변해준 차분한 담당자분과 달리, 나는 충격이었다. 과연 내가 수업들은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만약 FAIL을 받으면 장학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1년이 아니라 6개월 교환학생으로 변경해야 하나,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오면 학교에서 들어야 되는 수업들이 너무 불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ESIC 대학에는 FINANCE, BUSINESS ADMINISTRATION 등 몇가지의 세부 전공들이 있었는데, 각 전공에서 조금씩 이수한다면 보완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공 하나를 선택하고, 그 아웃라인에서만 과목 선택이 가능하다고 하여 선택의 폭이 너무 좁고 리스크가 커졌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교환학생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수강 중인데 새로 사귄 미국 친구들도 나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고 하였다. 직접 찾아가 끝까지 요구를 한 덕분에 필요한 과목들을 전공 아웃라인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에 비해 나는 한두번의 요청에 거절당하자, 안된다고 확신을 가지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지냈던 것이다. 이미 코스 변경을 불가능하고, 불공평한 것 같은 대우에 화도 났었다. 하지만 결국은 미국 친구들처럼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에 와서 ‘되든 안되든 결과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만큼 요청과 항의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과연 스페인에 있을 때만 필요한 마음가짐인가. 평범한 한국의 사회와 환경에 적응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낯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예전은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스페인 교환학생 및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실패와 차가운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쳐가면서 스스로 배우고 얻는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 보신다면 좋겠다.

 

최소현 에디터

 

국제경영학과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습득 중.

컨벤션 기업 취업을 목표로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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