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36년, 알렉산더는 나이 20세 때, 부왕 필리포스 2세의 죽음으로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기원전 333년 당시 최대 강대국인 페르시아 제국과 속령인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하였습니다.
그가 정복한 곳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 “알렉산드리아”가 무려 30여개 이상이며, 그 중 기원전 331년 그가 가장 마음에 두고 세운 도시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입니다.
그의 사후 통일된 제국은 사라졌고, 4개로 분할되었습니다. 그 중 알렉산더 부하로,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유지를 계승한 인물로 기원전 305년 이집트 파라오가 되었고, 알렉산드리아를 이집트 제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이후 17대에 걸쳐 275년간“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통치하였습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비롯 세계 각지에 있는 문서와 책들을 수집함으로, 양피지 70만 두루마리의 자료를 소장(한 두루마리는 지금의 책, 약 160권 분량으로), 당대 세계 최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가 남긴 최대 걸작품은 기원전 3세기에 번역된 칠십인 역이라 불리는 “셉투아진타”입니다. 70인 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출중한 교부들, 철학의 아버지 클레멘스, 교부 오리게네스, 정통신앙의 아버지 아타나시우스 등이 기독교 정통교리를 확립하여 헬라철학과 영지주의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수호한 일입니다.
특히 아타나시우스가 “성자와 성부는 동일한 본질이다.”라고 말한 기독론은 325년 세계 최초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 채택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교회 아버지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공회에 직접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구세주 예수님은 하나님 그 이하의 어떤 분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