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님 방문이 끝나고 3.15(목)-3.16(금) 살라망카 대학의 한국학과가 주최하는 한국문화주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유지한 서기관과 함께 살라망카를 방문하였다. 살라망카 대학의 한국학은 2001년에 첫 강좌가 개설되었고, 2015년에는 전공 학위과정으로 승격되어 2019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될 예정이었다. 한국문화주간 참석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하기로 하고, 이번 편에서는 살라망카 대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살라망카(Salamanca)는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200km에 위치한 도시로 자동차로 약 2시간이 걸린다. 로마교가 있는 토르메스(Tormes) 강 위쪽의 언덕에 건설된 살라망카는 1988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중세 도시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살라망카 대학은 1218년에 설립되어 이태리 볼로냐 대학,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그러면, 대학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자. 필자는 당시 대학의 초청을 받아 일반 방문객 보다는 자세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의 대학 건물들은 대개 카스티야 왕국의 국토회복운동 (Reconquista)의 마지막 시기였던 1415-1435년과 1442-1452년에 건설되었다. 대학 마당(patio)의 Luis de Leon 동상에서 볼 때 앞쪽은 본과(Escuelas Mayores), 뒤쪽은 예과(Escuelas Menores)가 위치하고, 오른쪽에는 과거 의과대학병원(Hospital del Estudio)였던 총장실 건물이 있다.
대학 최고의 명물은 본과(Escuelas Mayores) 건물 정면에 있는 파사드이다. 모두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하단의 중앙에는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의 원형 양각이 있는데, 주위에는 ‘대학을 위한 군주들, 군주들을 위한 대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카를로스 1세를 암시하는 3개의 방패가 중앙에 있고, 맨 왼쪽에는 카를로스 1세, 맨 오른쪽에는 포르투갈 이사벨 공주의 원형 양각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상단의 중앙에는 교황과 추기경들의 부조가 있는데, 교황이 살라망카 대학의 후원자였던 마르티노 5세 또는 베네딕토 13세라는 해석이 있다. 인물이 누구인지 다소 논란이 있지만, 상단 왼쪽에는 비너스, 바커스, 줄리어스 시저가, 오른쪽에는 헤라클레스, 아우구스투스 황제,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이 보인다. 상단의 위에도 여러 형태의 인간과 동물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른쪽에 있는 해골위의 개구리가 특히 재미있다. 필자는 Ricardo Rivero Ortega 총장 면담시에 파사드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총장실 건물 2층 발코니에서 파사드를 볼 수 있었다.
이 파사드는 카를로스 1세가 건축했다는 이론이 가장 유력하다.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한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 부부가 하단에 있지만, 카를로스 1세 부부와 상징 방패들이 중심 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1526년에 카를로스 1세가 포르투갈 이사벨 공주와 결혼한 점을 고려하면 건축 시기는 1513-1528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중남미와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를 통치하는 대제국의 군주로서 능력있는 관료들을 육성할 수 있는 대학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사드를 지나 건물로 들어 가면, 1층에는 4각형 회랑을 따라 여러 강의실들과 예배당이 있다. 필자는 Paraninfo와 Fray Luis de Leon 강의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Paraninfo는 주요 행사를 거행하는 강당이고, Fray Luis de Leon 강의실은 16세기 최고의 시인이자 신학자였던 Luis de Leon(1527-1591)이 강의했던 교실인데, 지금까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2층으로 올라 가면 역사 도서관이 있다. 엄격한 보안하에 허가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허용되는 이곳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고도서와 지구본들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에는 양피지 필사본 2,805권(가장 오래된 것은 11세기)과 1501-1830년 기간의 인쇄본 60,000권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 이후 1440-1500년 동안의 초기 인쇄본(incunable) 485권이 별도의 특수 보관소에 있었다. 한국 대학생이 2010년 이 도서관 지구본에서 동해 표기를 발견한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교환학생으로 살라망카 대학에서 공부했던 한택진 서울대 외교학과 학생은 6개월간의 끈질긴 요청 끝에 도서관 열람을 허가받았다. 도서관을 뒤지던중 MARE COREA와 MARE ORIENTALE가 표기된 1757년 영국 지리학자 제작 지구본을 발견한 것이다(2010.3.3 매일경제 참조). 이 학생은 나중에 외교관이 되어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다.
예과(Escuelas Menores) 박물관에 있는 살라망카의 하늘(Cielo de Salamanca)라는 천문점성화도 유명하다. 이 그림은 원래 1480년 본과(Escuelas Mayores) 1층에 있었던 도서관의 둥근 천장(boveda)에 그려진 것인데, 18세기에 예배당(capilla)으로 바꾸는 공사중에 2/3가 손실되어 1/3만이 천장에 숨겨져 남아 온 것을 1953-1954년 복구하여 박물관으로 옮겼다.
그런데, 국왕과 대학이 항상 협력적인 관계는 아니였던 것 같다. 필자가 당시 교수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자유로운 사조를 가졌던 대학이 국왕의 통치 이념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국왕이 대학 폐지를 검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본과(Escuelas Mayores) 건물의 파사드도 폐교 위기에 놓였던 대학이 국왕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국왕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예배당 천장에 숨기고 막아서 보존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건물은 아니지만 살라망카 대성당도 상당히 유명하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성당 파사드에 있는 여러 형상의 조각들을 자세히 보면, 우주인과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자가 있다. 16세기에 어떻게 이런 조각들이 가능했을까? 너무 이상해서 물어 보니, 1992년에 성당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상징물로 추가했다고 한다. 많은 것을 상상했는데 너무 싱거운 대답이었다.
이외에도 살라망카에는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가 너무 많다. 거리를 걸으면서 중세 대학도시의 분위기에 취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