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에는 아태지역 외교단, 외교부, 아시아교류재단(Casa Asia), 외교아카데미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관저에서 오찬을 개최하였다. 봄이 한창이고 날씨가 너무 좋아 정원 테라스에 테이블을 차렸고, 식사 전에 가야금 연주자 동그란(Dong Gran)씨를 초청하여 간단히 연주회를 가졌다. 아리랑 선율을 들으며 비빔밥 등 한식을 먹으면서 봄날의 오후를 즐겼다.
필자는 재임시에 일주일에 1-2번 정도 관저에서 오만찬 행사를 했다. 관저행사는 스페인 주요인사, 외교단들과 친분을 구축하고 한국을 홍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써서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들의 신상 파악 등 대화 준비에도 최선을 다해야한다. 손님들을 맞아 칵테일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로 이동한 후 마련한 음식을 설명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식사가 끝난 후 다시 거실에서 커피나 식후주를 마신 후 손님들과 작별을 하는 3시간 정도의 행사가 끝나면 무척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음식은 아내가 요리사와 의논하여 준비하는데, 한식을 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이 항상 숙제라고 한다. 김치는 항상 내놓는데 처음 접하는 손님들의 반응이 매우 차이가 난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맛있다고 한 접시를 더 달라는 사람들도 많다. 음식은 아내의 소관이긴 하지만, 필자는 항상 비빔밥을 고집하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비빔밥을 먹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밥위에 형형색색의 야채들이 가지런하게 놓인 음식이 나오면, 손님들은 예쁘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먹는지를 모른다. 필자가 비빔밥의 뜻을 설명하면서, 고추장을 넣고 가지런하게 배열된 야채들을 섞어버리면, 손님들은 180도 반전된 상황에 재미있어 하면서 열심히 비빈다. 간혹 아까워서 예쁜 야채들을 흩어 버리지 못하겠다면서 그대로 먹는 사람들도 있다.
스페인에서는 식사때 어떤 포도주를 낼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스페인 포도주를 내면 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처럼 고유의 포도품종으로 포도주를 생산하는 국가이다. 레드 와인은 템프라니요(Tempranillo), 화이트 와인은 알바리뇨(Albariño)가 주 품종이다. 맛이 좋고 가격도 적당해서, 3만원이면 좋은 포도주를 맛볼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 공무로 출장온 대표단들의 대접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해외에도 ‘김영란 법’이 적용되어 물가가 싸지 않은 스페인에서 단가 3만원으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아마도 필자 재임시 관저에 오신 분들은 반상기에 밥, 국, 기본 반찬을 담은 조촐한 식사를 기억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대사관저는 해외에서 그 나라의 위상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스페인과 오랜 수교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아르헨티나의 대사관저는 시내 한복판에 엄청난 규모의 대지와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대사관저는 마드리드 시내에서 약간 서북쪽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가인 Puerta de Hierro 지역에 있다. 규모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대사관저로서 큰 문제는 없는 편이다. 다만, 진입도로가 좁고 일방 통행이며 주변에 주차공간이 없어 손님들의 접근이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건물도 40년이 넘어 다소 오래되었다. 좀더 좋은 위치에 큰 건물로 이전하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관저 관리와 관련하여, 공간이 크고 전기와 물 사용이 많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썼다. 한번은 물 사용료가 평소의 몇 배가 나와 깜짝 놀랐다. 원인을 파악했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정원 스프링클러 관에서 누수가 되는 것으로 의심이 되어 매일 새벽과 밤에 정원에 물이 나올때 정원을 관찰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이 문제는 겨울이 되어 비가 많이 오면서 부터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저 1층은 거실과 식당으로 공적 공간이고 침실은 2층에 있는데, 지붕과 천장이 거의 붙어 있어 직사광선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특히 여름은 강렬한 태양과 40도가 넘는 고온으로 찜통이었는데, 전기료가 비싸 에어컨을 많이 켤 수도 없어 선풍기로 참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관저에서 필자 부부는 한국 요리사와 페루 출신 가정부와 3년간 생활하였다. 한국 요리사는 2012-2015년 주코스타리카 대사 시절에도 함께 근무했었다. 코스타리카 근무를 마치고 다음 공관 근무때 다시 일하자고 약속했는데, 고맙게도 한국에서 3년을 기다려 주어 함께 스페인으로 왔다. 성실하고 성격도 좋아 아내와 잘 지냈다. 요즘 요리사와 마음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공관장들이 많은데, 우리 부부는 정말 인복이 있었던 것 같다.
가정부인 이사벨은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해온 여성으로 하루종일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따로 업무 지시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아서 척척 일을 한다. 성격도 명랑하고 흥이 넘친다. 이사벨의 좋은 성격과 성실함은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했다. 이민자로서 특별한 사정도 있겠지만 타고난 천성인 것 같았다. 스페인을 떠날때 작별인사를 하자 아쉬움에 눈물이 글썽했던 모습이 아직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