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간 주요 현안이자 오래 준비하여온 펠리페 6세 국왕의 국빈방한이 10.23(수)-24(목)간 마침내 이루어졌다. 펠리페 6세는 2014년과 2017년에 방한을 추진하였으나, 각각 양국의 국내 사정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펠리페 6세는 2018년 6월 필자의 신임장 제정시 2차례의 방한 무산을 아쉬워하면서, 방한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필자에게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오랜 현안이 필자의 재임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필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9년 10월 방한이 시기적으로는 2014년과 2017년 보다는 더 적절했고 의미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번 방한이 2020년 양국 수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는 어느 때보다 제반 분야에서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하였고, 따라서 향후 양국 관계를 한차원 더 높이 발전시킬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틀을 구축하기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었기 때문이었다.
체류 시간이 1박 2일로 다소 짧아 많은 일정을 가지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첫날에 12시 한국 도착후 현충탑 헌화, 공식환영식, 정상회담, 양해각서 서명식, 국빈만찬 등의 공식 일정외에 반기문 총장도 접견하였고, 둘째날에는 한국 경제인 조찬 간담회, 한-스페인 비즈니스 포럼 참석, 국회의장 면담, 서울시청 방문, LG 사이언스 파크 방문, 한국 서문학회 간담회, 스페인 동포 간담회 등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밤 9:30에 한국을 떠났다. 레티시아 왕비는 첫날에는 김정숙 영부인과 환담하고, 둘째날에는 코트라에서 개최된 한-스페인 소셜벤처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국회, 서울시 방문은 물론 국왕의 관심 사항인 경제협력, 기술혁신, 스페인어 진흥과 관련한 일정이 모두 포함되었다. 1박 2일을 한시도 쉬지 않고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필자는 국왕의 서울공항 도착 행사부터 국왕을 임기모 의전장과 함께 영예 수행하였다. 필자의 차량은 항상 국왕 내외 차량의 바로 뒤에 배치되었고, 모든 행사에 한국측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가까이서 국왕을 보고 발언을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수행원들중에서 스페인 수행원들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조언을 주고 안내하는 역할도 했다.
몇가지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적을까 한다. 청와대 대정원에서 진행된 공식 환영식에서 필자는 우리측 환영인사 라인에 서있었다. 양국 정상들이 전통 의장대를 사열하고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하였는데, 주스페인대사로 필자가 소개되자 문재인 대통령께서 환한 미소로 “행사 준비로 수고가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경우 말씀없이 악수만 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예기치 않은 말씀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펠리페 6세의 정상회담은 시종일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Josep Borrell 외교장관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그는 최근 새로이 구성된 EU 집행위원회에서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선출되었고, 곧 취임할 예정이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정상회담 직전에 필자를 통해 Borrell 장관과 인사를 나누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 직접 Borrell 장관의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취임을 축하했다.
국빈만찬에서 필자는 양국 정상 내외가 앉는 헤드 테이블에 앉는 영광을 가졌다. 필자의 옆에 Reyes Maroto 산업통상관광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앉아 4차산업혁명 협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만찬에 스페인 포도주가 나올 것은 예상을 했는데,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의 발부에나(Valbuena)라는 최상급이 나왔다. Josep Borrell 외교장관이 제일 좋아했고 스페인 포도주 이야기도 많이 했다. 양국 전통 문화들로 구성된 공연도 훌륭하였는데, 특히 필자가 추천한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만남”도 포함되어 기분이 좋았다. 지난 5월 마드리드에서 공연한 판소리꾼 정보권이 이날도 출연하였다.
다음날 아침 한국 경제인과의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하여 행사장을 점검하던 Alfredo Martínez 왕실 의전장이 반갑게 포옹을 했다. 어제 청와대 행사가 잘 진행되어 국왕 내외가 매우 좋아하신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조찬 간담회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하여 삼성전자, LG 전자,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등 9개 대기업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국왕은 한국 대기업들의 스페인 진출 계획, 기술과 혁신 현황 등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였고, 양국 기업들이 활발히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어 하였다.
이번 방한에는 Antonio Garamendi 기업연합회(CEOE) 회장, José Luis Bonet 상공회의소 회장과 30여개의 스페인 주요 기업들이 동행하였다. “스페인 경제협력대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국왕이 많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과의 협력에 대한 스페인 기업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10.25 개최된 한-스페인 비즈니스 포럼에는 펠리페 6세와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양국 경제단체와 기업인 300여명이 행사장을 꽉 채어 열기가 대단하였다. 스페인측은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매우 고마워했다. 국빈 방한이라도 우리 대통령이 상대국 국가원수의 별도 행사에는 잘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우리 대통령의 참석을 여러번 건의하였는데, 양국 정상이 양국 기업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행사장을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이 양국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펠리페 6세는 포럼 개막식이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한 후 로비에서 한국 기업인들과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피곤하기도 했겠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방문한 국가의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시 스페인어게인의 운영자이자 DIOKOS 대표인 대니한도 국왕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