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이미 스페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어 버렸다. 2006년 도보여행가 김남희 작가의 기행문이 책으로 출간된 이후 한국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순례객이 계속 증가하다가 마침내 2019년에는 8,224명이 방문하였다. 이 숫자는 세계 8위에 해당된다. 2021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방문시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제주 올레길 교류 프로그램이 합의되기도 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졌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고, 필자의 스페인 근무시에 있었던 몇가지 이야기를 적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적이 없다.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체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순례길의 주요 지점들은 거의다 자동차로 가보았다. 출장이나 휴가를 통해서였다. 먼저 2018년 8월에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갔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제단에 있는 야고브 상 뒤에서 포옹을 하고 밑에 있는 지하로 가서 야고브 관 앞에서 기도를 했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숙소는 대성당과 함께 광장에 있는 파라도르였는데 중세 시대에는 순례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쪽으로 100km를 더 가서 대서양의 땅 끝 마을 Finisterre도 가보았다. 순례길의 공식적인 종착지는 산티아고이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Finisterre로 가야 순례를 마친다고 한다.
2020년 2월에는 산티아고와 레온의 사이에 있는 사리아, 오세브레이로, 비야프랑카 데 비에르소(스페인 하숙집 촬영지), 폰페라다, 몰리나세카에 가보았다. 마지막으로 2020년 7월에는
순례길 시작 부분인 프랑스 국경마을인 론세스바예스, 팜플로나(황소몰이로 알려진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 여왕의 다리 마을, 로그니뇨를 지나 중간 구간인 부르고스를 갔다. 간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으면 필자가 마치 순례길을 완주한 것 처럼 보일 것이다.
2018년 대사관에 민원이 하나 접수되었다. 겨울에는 눈 때문에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피레네 산맥 구간이 폐쇄되는데도, 한국사람들이 무시한다는 것이 하나였다. 두번째는 순례길 숙소(알베르게)에서 고용 부엌을 한국인들이 삼겹살을 굽느라고 독점한다는 내용이었다. 배영기 영사를 보내 생장 피에 드 포르 사무실에서 한글 안내판을 설치하고 안내물도 더 많이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알베르게 부엌 사용 문제는 사실무근이었다. 아마 일부 한국인들이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팜플로나 관광청과 알베르게 관계자들은 한국 순례객들이 예의가 바르다고 무척 칭찬을 했다고 한다. 사실 순례길 곳곳에서 한국인 방문을 환영하고 있었다. 스페인 하숙집 촬영은 방송 뉴스로 많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대사관은 2020년 수교 70주년 행사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요 지점들을 순회하는 한국문화행사를 계획하고 해당 지방정부들과 협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에는 처음으로 대한항공 전세기가 순례객을 싣고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갈리시아 주정부와 관광협회가 필자에게 2019년 갈리시아 관광상(외국대사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면서, 12.3 라 코루냐 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고풍스러운 라 코루냐 대극장에서 진행된 시상식은 음악, 조명, 순서가 마치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받은 외국대사상 시상에서는 먼저 한국인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방문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어 필자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갈리시아주 관광장관이 비무장지대를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평화의 길로 만들고 싶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소개하고 지난 5년간 2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설명하면서, 수상자로 필자를 호명하였다. 음악과 함께 조명이 필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위로 오르는 모습을 비추었다. 갈리시아 관광협회장으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포디움에 섰다. 많은 청중들을 앞에 두고 무대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상 소감을 말하려고 하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간 모든 한국인 순례객들을 대표해서 이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갈리시아를 좋아하여 산티아고와 라 코루냐를 여러번 방문하였으며, 특히 갈리시아식 문어 요리와 리아스 바이사스(Rias Baixas) 지방의 알바리뇨(Albariño) 화이트와인을 즐겨 먹는다.”라는 말을 하니까,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냈다. 순간 힘이 났고, 갈리시아와의 관광협력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요지의 마무리를 하고 무대를 내려 왔다.
그리고 2020년 2월 8일에는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104km에 위치한 도시인 사리아(Sarria)에서 음식 축제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이 왔다. 사리아는 순례길 루트에서 프랑스길과 북부길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거리에서 한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이 지역에서 사육하는 셀티코 품종의 돼지고기로 코시도(Cocido)라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축제이다. 셀티코는 잘 알려진 이베리코와 함께 스페인의 2대 돼지 품종이다. 코시도(Cocido)는 스페인의 전통음식으로 두툼한 질그릇에 고기, 초리소(소시지), 병아리콩, 감자, 채소를 넣고 삶은 고열량의 보양식이다. 특히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순례객들에게 맞는 음식인 것 같다. 2019년 10월에 만나 알게된 Juan José González 헌법재판소장이 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이윤교 변호사와 Carlos Lema 콤플루텐세대학 법대교수 등 법조인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참석했다. 음식 축제에 참석하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한국인 순례객이었다. 지역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는데 한국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오는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질문이 집중되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갈리시아 주정부 관계자, 사리아 시장 등 지역 유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스페인 갈리시아의 한 도시에서 까지 이렇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