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내가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게 해 준 옆집 할머니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친절함을 내게 베풀어주었다.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뿔싸, 집 열쇠가 없어진 것 아닌가.
플랫 메이트인 안나와 브루노에게 연락을 해보았으나 브루노는 일하는 중이었고 안나는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부동산 에이전시에 겨우 연락을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기사 아저씨를 기다리며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언제 올지 모르니 어찌 되었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차가운 복도 바닥에서 멀뚱멀뚱 앉아서 수첩에 이런저런 푸념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스페인의 일처리 속도를 봤을 때 적어도 2시간은 걸리지 싶었다.
옆집 할머니가 외출을 하는 모양이었는지 밖으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영어를 하지 않았고 나는 스페인어를 하지 않았으니 말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만국의 공통어인 바디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얼핏 내가 이해하기로는 – 왜 밖에 앉아있느냐- 하는 것 같아 열심히 몸짓으로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집 문을 활짝 열더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고프냐고 물어보며 (네, 전 배가 고픕니다, 뗑고 암브레! 이 표현은 필수표현으로 외웠더랬다.) 냉장고에서 닭가슴살을 꺼내 주고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더니, ‘난 일을 하러 나가야 해. 이거 구워서 먹고 편하게 있다가 나가렴. TV도 보고 해’ 하며 그야말로 생판 모르는 남인 나를 본인 집에 홀로 두고 일을 하러 가셨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할 정도의 친절함이었다. 입장을 바꿔 내가 한국에서 사는데 앞집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열쇠를 잃어버려 집 앞에 앉아있다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친절함은 “내가 집에서 기사 아저씨가 언제 오는지 봐줄게, 친구 집이나 어디 밖 카페에 가있어” 정도이지 싶었다.
생판 모르는 남을 내 집에 들어와 있게 하다니 (심지어 본인은 일이 있어 나가면서), 이런 사람을 믿는 기본 신뢰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할머니의 집은 정말 따뜻했다. 곳곳에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이 놓아져 있었고 집은 정갈하게 정리되어있었으며 인위적이지 않은 따뜻한 집 냄새가 났다. 닭가슴살을 구워 먹고 설거지를 해놓은 후 기사 아저씨가 올 때까지 푹신한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쉴 수 있었다.
후에 스페인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니하오, 곤니찌와”라고 말을 걸고 지들끼리 낄낄대며 귓속말을 해대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이 발렌시아 앞집 할머니 덕분에 여전히 스페인 발렌시아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글을 쓰기 위해 옛 사진을 찾아보니, 닭가슴살 뿐만이 아니라 빵과 계란도 제공해주셨다..
김유영 에디터
한국에서 경영대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IT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일하다가, 현재는 글로벌 애드테크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