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직장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장인의 삶은 스페인이나 한국이나 고달프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지만, 스페인에서 한 교환학생 생활은 정말 꿈만 같고 행복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느긋하게 쉬고 즐기며 살아가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대도시인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비해, 비교적 한가로운 발렌시아에 살았기 때문에 더 그런 거였을 수도 있겠다.
모든 시스템이 느렸고 본인이 요구하는 것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므로 화를 내거나 재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일례로 친구들과 마드리드로 여행을 갈 때 발렌시아 공항에서 비행기가 지연되는 일이 있었는데 항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단 한 명만이 항의를 했는데 들어보니 이 비행기 지연으로 인해 사업 상 중요한 회의를 놓치게 되는 모양이었다. 신기했던 것은 이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항의를 받는 직원은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으며, 과하게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하는 모양새로 모두 다음날로 지연된 비행기 시간 동안 머물 자리를 찾으러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지연된 비행기 탓에 공항에서 노숙을 하게되었던 그날,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친구들과 여행도 다녀오고, 학기도 끝나고, 나 홀로 유럽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 후 발렌시아로 돌아와 남은 시험들을 치렀다.
발렌시아는 3월 즈음에 “Las Fallas” (라스 파야스)라는 봄맞이 불꽃 축제를 여는데 해당 축제를 보고 나서 본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여행을 더 하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스페인에 남아서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3월로 티켓 날짜를 미루고 축제를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2월에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이 예약되어 있었고 비행기 표를 다시 구매하기에는 유럽여행으로 이미 모든 돈을 소진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자전거를 중고장터에 올려 처분하고,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고, 친구들은 나에게 롤링페이퍼를 써주었다.
스페인에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가족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내 인연들.
독일에서 온 라리사는 내가 짐을 다 싸고 나서 집 문을 나서자 꼭 껴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이민용 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발렌시아 공항에 우두커니 앉아 한국에서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 – 잠시 고민을 했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No pasa nada
스페인에서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이 말.
직역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유영 에디터
한국에서 경영대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IT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일하다가, 현재는 글로벌 애드테크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