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트라나 여행 가이드: 에볼리 공녀와 두칼 궁전, 태피스트리와 산타 테레사의 흔적을 즐기는 방법
스페인어게인 여행 가이드(도시가이드 #121)

파스트라나(Pastrana)는 과달라하라주의 라 알카리아(La Alcarria)에 자리한 작은 역사도시입니다. 중세에는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영지였지만 16세기 들어 멘도사·실바 가문의 귀족도시로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1542년 Ana de la Cerda가 건축가 Alonso de Covarrubias에게 두칼 궁전 건설을 맡겼고, 이후 Ruy Gómez de Silva와 Ana de Mendoza y de la Cerda, 즉 유명한 Princesa de Éboli가 파스트라나를 자신들의 공작령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여행의 중심은 Palacio Ducal과 Plaza de la Hora입니다. 에볼리 공녀는 Felipe II 궁정의 권력투쟁과 Juan de Escobedo 살해사건에 연루된 뒤 생애 마지막 약 10년을 자신의 파스트라나 궁전에 감금된 상태로 보냈고 1592년 이곳에서 사망했습니다. 광장의 이름이 ‘한 시간의 광장’이 된 배경으로는 그녀가 말년에 하루 한 시간만 궁전 발코니에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공식 관광청도 이를 전설로 소개하고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과 구분해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파스트라나는 종교·예술 여행지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1569년 Santa Teresa de Jesús가 이곳에서 여성용 San José 수도원과 남성용 San Pedro 수도원을 세웠고, San Juan de la Cruz도 이후 남성 수도원에서 수련장으로 활동했습니다. Colegiata의 Museo Parroquial에서는 1471년 포르투갈 국왕 Alfonso V의 북아프리카 원정을 묘사한 세계적인 고딕 플랑드르 태피스트리와 에볼리 공녀·파스트라나 공작가의 묘당을 볼 수 있습니다.

파스트라나 여행 가이드: 에볼리 공녀와 두칼 궁전, 태피스트리와 산타 테레사의 흔적을 즐기는 방법

파스트라나를 처음 보면 거대한 랜드마크보다 작은 귀족도시의 분위기가 먼저 들어옵니다.

황토색 기와지붕과 석조주택이 언덕을 따라 이어지고, 중심부에는 넓은 Plaza de la Hora와 육중한 Palacio Ducal이 자리합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Colegiata가 나타나고 좁은 골목을 더 걸으면 수도원·귀족주택·옛 상업지구가 이어집니다.

앞선 도시가이드 #119 벨몬테가 후안 파체코의 15세기 성벽 귀족도시였고 #120 알라르콘이 후카르강의 천연요새였다면, 파스트라나는 16세기 스페인 왕실의 권력·귀족·종교개혁·국제무역이 한 작은 도시 안에서 충돌했던 장소입니다.

여기에는 Felipe II의 최측근 Ruy Gómez de Silva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이자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귀족여성 가운데 한 명인 Ana de Mendoza, Princesa de Éboli가 있었습니다.

Santa Teresa de Jesús가 두 개의 카르멜 수도원을 만들었고 San Juan de la Cruz가 수련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라나다에서 이주해 온 Morisco 주민들은 새로운 Albaicín 지구에서 실크와 태피스트리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 뒤 Colegiata 안에는 포르투갈 왕의 북아프리카 정복을 묘사한 거대한 플랑드르 태피스트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파스트라나는 단순히 ‘에볼리 공녀가 갇혔던 마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스트라나는 어떤 도시인가

파스트라나의 확실한 도시사는 중세부터 시작합니다.

현지 관광청에 따르면 불확실한 로마 기원에 관한 전승은 있지만, 실제 도시 형성은 13세기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영지가 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14세기에는 성벽이 만들어졌고 1369년 Enrique II가 Villa의 특권을 부여해 독립적인 행정단위가 됐습니다.

큰 변화는 16세기에 찾아옵니다.

1541년 Carlos I는 Pastrana를 칼라트라바 기사단에서 분리해 Ana de la Cerda에게 넘겼습니다.

이듬해인 1542년 그녀는 당대의 대표 건축가 Alonso de Covarrubias에게 새로운 궁전 건설을 맡겼습니다.

이때부터 중세 마을은 르네상스 귀족도시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파스트라나 여행은 며칠이 적당한가

파스트라나의 역사 중심부는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Palacio Ducal과 태피스트리 박물관이 모두 가이드 시간에 맞춰 운영되고, Santa Teresa 관련 수도원이 중심부 밖에도 있어 단순히 거리만 보고 소요시간을 판단하면 부족합니다.

반나절

Palacio Ducal → Plaza de la Hora → Colegiata와 태피스트리 박물관 정도가 적당합니다.

하루

가장 추천합니다.

두칼 궁전과 태피스트리, Colegiata를 충분히 본 뒤 Cuatro Caños, Albaicín, San José 수도원 외관, 역사 골목과 지역음식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1박 2일

Santa Teresa와 San Juan de la Cruz의 흔적을 깊게 보고 싶다면 좋습니다.

둘째 날 Convento del Carmen과 Museo de Santa Teresa를 방문하고 주변 라 알카리아 풍경이나 하이킹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Festival Ducal 기간에 방문한다면 1박 이상의 가치가 훨씬 커집니다.

파스트라나 여행은 Plaza de la Hora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Plaza de la Hora는 파스트라나의 대표 공간입니다.

북쪽에는 Palacio Ducal이 자리하고 남쪽 한 면은 건물로 완전히 막혀 있지 않아 아래쪽 Arlés 계곡과 농경지가 보입니다.

현재는 마을의 중심광장이지만 처음부터 일반적인 Plaza Mayor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Ana de la Cerda가 Covarrubias에게 궁전과 함께 설계를 맡겼을 때 이곳은 궁전 앞의 Plaza de Armas, 즉 의식·군사적 성격의 넓은 공간으로 계획됐습니다.

이후 Ruy Gómez de Silva가 양쪽에 포르티코를 설치해 시장공간으로 발전시켰고, 나중에는 축제와 투우 같은 공공행사에도 사용됐습니다.

왜 이름이 ‘Plaza de la Hora’일까

광장의 이름을 직역하면 ‘한 시간의 광장’입니다.

이 이름은 에볼리 공녀와 연결됩니다.

Ana de Mendoza는 생애 마지막 시기를 Palacio Ducal에 감금된 상태로 보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말년의 그녀가 궁전 방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하루 한 시간만 창살이 있는 발코니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 광장을 Plaza de la Hora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현지 공식 관광자료도 이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표현합니다.

Ana de Mendoza가 궁전에 감금되어 사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정확히 하루 한 시간 발코니에 나왔다’는 부분까지 확정된 기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Palacio Ducal은 Princesa de Éboli가 처음 지은 궁전이 아니다

많은 여행안내에서 이 건물을 ‘에볼리 공녀의 궁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녀가 실제로 살았고 마지막까지 갇혀 있었기 때문에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건축사를 정확히 보면 궁전을 처음 주문한 사람은 에볼리 공녀가 아닙니다.

Ana de la Cerda, 즉 Ana de Mendoza의 할머니가 1542년 Alonso de Covarrubias에게 건설을 맡겼습니다.

Covarrubias는 정사각형 평면에 네 개의 모서리 탑, 중앙 안뜰, 측면과 후면의 정원, 앞쪽의 넓은 광장을 가진 르네상스 궁전단지를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Ana de la Cerda와 주민 사이의 분쟁 등으로 최초 설계 전체가 당시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궁전은 16세기의 설계 + 후대의 변화 + 현대 복원이 결합된 건축입니다.

궁전 외관은 생각보다 절제되어 있다

스페인의 르네상스 궁전이라고 하면 화려한 조각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Palacio Ducal의 정면은 상당히 엄격합니다.

금빛에 가까운 석재 벽이 길게 이어지고 양끝에는 각진 탑이 올라갑니다.

중앙 출입구 주변에 장식이 집중되고 그 위로 Mendoza 가문의 문장이 보입니다.

출입구의 엔타블러처에는 현재도 ‘DE MENDOÇA I DE LA CERDA’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관의 절제된 분위기와 내부의 화려한 목조천장이 강한 대비를 만듭니다.

내부에서는 플라테레스코 목조천장을 봐야 한다

Palacio Ducal 내부의 대표 볼거리는 Covarrubias가 설계한 artesonados, 즉 장식 목조천장입니다.

플라테레스코 장식과 기하학적 목재구조가 여러 주요 방의 천장을 채웁니다.

또한 톨레도산 무데하르 계열 azulejo 타일이 남아 있어 르네상스 귀족건축에서 기독교·이슬람 장식전통이 어떻게 결합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파스트라나 여행에서는 외관만 보고 ‘평범한 석조 궁전’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진짜 내용은 내부에 있습니다.

현재의 중앙 안뜰은 16세기 원형 그대로가 아니다

이 부분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현재 궁전 소유자는 Universidad de Alcalá입니다.

1999년 Antonio Fernández Alba와 Carlos Clemente가 이끄는 복원사업이 진행됐고, 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중앙 안뜰을 현대적인 재료와 방식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궁전 안에서는 오래된 르네상스 공간과 현대적인 안뜰이 시각적으로 크게 대비됩니다.

이를 ‘잘못 복원된 옛 안뜰’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과거 건축과 현대 개입을 구분해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Princesa de Éboli는 누구인가

Ana de Mendoza y de la Cerda는 1540년 Cifuentes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력한 Mendoza 가문 출신이었고 젊은 시절 Felipe 왕자의 측근 Ruy Gómez de Silva와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훗날 Felipe II의 가장 가까운 정치적 측근 중 하나가 됐고 Prince of Éboli라는 작위를 받았습니다.

Pastrana를 매입한 뒤 두 사람은 각각 공작·공작부인이 되었고 도시를 자신들의 영지 중심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오늘날 파스트라나가 ‘Villa Ducal’이라고 불리는 핵심 시대입니다.

유명한 안대의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Ana de Mendoza의 초상화를 보면 오른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습니다.

전설에서는 어린 시절 검술을 하다가 눈을 다쳤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파스트라나 공식 관광청은 이러한 검술 사고 이야기를 전설로 설명하면서 실제로는 질병이나 시력·안구 이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따라서 ‘검술 중 눈을 잃은 공녀’라고 사실처럼 단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Ruy Gómez de Silva는 Felipe II 궁정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파스트라나의 16세기 발전을 Ana de Mendoza 개인의 이야기로만 보면 부족합니다.

남편 Ruy Gómez de Silva는 Felipe II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궁정에서는 강경한 Duke of Alba 계열과 경쟁하는 이른바 Ebolista 정치세력을 대표했고, 네덜란드 문제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협상적인 접근을 주장했습니다.

Pastrana를 공작령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이런 정치적·경제적 지위와 연결됩니다.

궁전, 시장, 수도원과 새로운 산업지구가 하나의 계획 아래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에볼리 공녀의 몰락은 Antonio Pérez 사건과 연결된다

1573년 Ruy Gómez가 사망한 뒤 Ana de Mendoza의 삶은 크게 바뀝니다.

그녀는 한때 San José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지만 카르멜 수도자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다시 궁정생활로 돌아갑니다.

이후 Felipe II의 비서 Antonio Pérez와 가까워졌고, 왕의 이복동생 Don Juan de Austria의 비서였던 Juan de Escobedo 살해사건과 관련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됐습니다.

결국 그녀는 왕의 명령으로 구금됐습니다.

생애 마지막 약 10년은 자신의 Pastrana 궁전에서 감금된 채 보냈고 1592년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때문에 Palacio Ducal은 화려한 귀족궁이면서 동시에 스페인 궁정정치의 비극적인 감옥이기도 합니다.

2026년 Palacio Ducal 방문은 가이드 방식이 기본이다

현재 Pastrana 관광청은 Palacio Ducal 내부를 가이드 방문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식 안내상 일반적인 패스는 월~금요일 12:30·16:30, 토요일 12:00·16:00, 일요일 12:00이며 최소 5명이 필요합니다.

개별 요금은 현재 €5이고 최대 방문인원은 5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사전예약을 권장합니다.

별도로 역사 중심부와 궁전을 함께 보는 투어도 있지만 7월과 8월에는 해당 통합투어가 쉬는 기간으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름 방문이라면 ‘궁전이 닫혔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형태의 방문이 운영되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Plaza de la Hora에서 계곡 쪽도 꼭 보자

대부분의 여행자는 궁전 쪽으로만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광장의 반대쪽이 파스트라나의 지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남쪽으로 Arlés 계곡과 과수원·농경지가 내려다보입니다.

16세기 Morisco 주민들이 들어온 뒤 이 지역의 농업기술을 발전시키고 과수재배를 확대한 역사도 이 풍경과 연결됩니다.

궁전의 정치사와 아래쪽 농경·산업경제가 하나의 광장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Colegiata는 외관보다 내부가 훨씬 화려하다

Iglesia Colegiat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은 파스트라나의 두 번째 핵심입니다.

현재 건물의 기원은 13세기 칼라트라바 기사단이 세운 작은 로마네스크 교회까지 올라갑니다.

14세기에는 세 개의 신랑으로 확장됐고 감시·방어 필요 때문에 종탑도 방어적인 성격을 갖게 됐습니다.

15~16세기에도 계속 증축되면서 고딕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1569년 에볼리 부부의 요청으로 교황 Pius V가 이 교회에 Colegiata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현재의 거대한 내부는 에볼리 부부의 아들이 완성했다

Colegiata 승격은 1569년에 이루어졌지만 오늘날 보는 웅장한 형태의 상당 부분은 그보다 뒤입니다.

에볼리 부부의 아들 Fray Pedro González de Mendoza가 1626~1639년 대규모 확장공사를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작가의 가족묘당도 주제단 아래에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건물은 한 시대의 교회가 아닙니다.

13세기 로마네스크 기원 → 중세 증축 → 16세기 Colegiata → 17세기 공작가의 장례·예술 중심지라는 층이 겹칩니다.

주제단도 자세히 볼 만하다

현재 주제단은 1637년 Matías Jimeno가 제작했습니다.

중앙에는 San Francisco de Asís가 자리하고 주변으로 여성 성인과 순교자들의 그림이 배치됩니다.

특히 프랑스 화가 Jacques Stella가 알라바스터에 그린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작품이 중요한 소장품입니다.

이는 교황 Urban VIII가 제3대 Pastrana 공작에게 선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703년 제작된 바로크 오르간도 복원돼 현재까지 연주 가능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Colegiata의 진짜 보물은 태피스트리다

Museo Parroquial de Tapices는 파스트라나 여행에서 반드시 볼 가치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핵심 네 작품은 1471년 포르투갈 국왕 Alfonso V의 북아프리카 원정을 묘사합니다.

Arcila 상륙, 포위·공격과 점령, Tánger 점령 등 당시 전쟁을 거대한 화면에 매우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각 작품은 평균 약 11×4m에 달하며 실크와 양모로 짜였습니다.

왜 이 태피스트리가 특별한가

중세 태피스트리에서는 성경·신화·전설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Pastrana의 작품은 제작 당시와 거의 동시대에 일어난 실제 군사작전을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현지 박물관은 이를 당대 사건을 기록한 매우 이른 시기의 시각적 전쟁 연대기라는 점에서 특히 높게 평가합니다.

병사의 갑옷, 무기, 깃발, 배와 진형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단순한 장식용 직물 이상입니다.

15세기 군사사와 의복·무기사를 연구하는 시각자료이기도 합니다.

태피스트리는 벨기에 Tournai에서 만들어졌다

핵심 작품들은 당시 유럽 최고의 태피스트리 생산지 가운데 하나였던 현재 벨기에의 Tournai에서 1471~1475년경 제작됐습니다.

현지 공식 관광자료는 Alfonso V가 자신의 1471년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Passchier Grenier 계열 공방에 제작을 맡겼다고 설명합니다.

오늘날 작은 스페인 마을에 이런 거대한 포르투갈 왕실 태피스트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포르투갈 태피스트리가 왜 Pastrana에 있을까

이 작품들은 원래 Pastrana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Mendoza·Infantado 가문의 컬렉션에 들어왔고, 1667년 제4대 Pastrana 공작 Rodrigo de Silva y Mendoza와 관련해 Colegiata에 기증됐습니다.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파스트라나에서 보존됐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여러 차례 보존·복원 작업이 진행됐고 해외 주요 박물관 전시를 거친 뒤 2014년 Pastrana로 돌아왔습니다.

‘태피스트리가 4점인가 6점인가’ 혼동하지 말자

자료에 따라 숫자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가장 널리 ‘Tapices de Pastrana’의 핵심으로 설명되는 것은 Alfonso V의 1471년 Arcila·Tánger 원정을 담은 4점입니다.

박물관 컬렉션에는 이들과 연결해 전시되는 다른 플랑드르 태피스트리도 있어 전체 컬렉션을 더 넓게 설명하는 자료에서는 6점 등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행자가 우선 기억할 핵심은 ‘15세기 포르투갈 원정을 묘사한 거대한 고딕 플랑드르 핵심 4점’입니다.

Museo Parroquial에서는 공작가 묘당도 함께 본다

태피스트리만 보고 끝나는 방문이 아닙니다.

가이드 방문에는 Colegiata 설명과 주제단 아래의 공작가 크립트도 포함됩니다.

이곳에는 Ana de Mendoza와 Ruy Gómez de Silva, 즉 에볼리 부부를 비롯해 Pastrana 공작과 Infantado 가문의 인물들이 묻혀 있습니다.

Palacio Ducal에서 에볼리 공녀의 삶과 감금을 봤다면 Colegiata에서는 그녀의 마지막 묘소까지 연결됩니다.

2026년 태피스트리 박물관은 예약을 권장한다

현재 공식 안내는 가이드 방문을 기본으로 하며 최소 5명 기준입니다.

일반 개별요금은 €5, 만 8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기본 패스는 10:30, 11:30, 13:15, 16:00, 17:30로 안내되고 있고 사전예약을 권장합니다.

Palacio Ducal과 함께 파스트라나의 핵심 내부관람 장소이므로 하루 일정을 짤 때 두 곳의 가이드 시간을 먼저 고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파스트라나에서는 Santa Teresa de Jesús의 흔적을 따라가야 한다

1569년 파스트라나는 또 다른 역사적 전환을 맞습니다.

Ruy Gómez와 Ana de Mendoza가 Santa Teresa de Jesús를 불러 카르멜 개혁의 수도원을 세우도록 요청했습니다.

Teresa는 이곳에서 여성 수도원과 남성 수도원을 동시에 세우게 됩니다.

여성용이 Convento de San José입니다.

남성용이 Convento de San Pedro이며 현재 Convento del Carmen으로 불립니다.

파스트라나는 Santa Teresa가 남녀 두 수도원을 모두 설립한 특별한 도시로 기억됩니다.

Convento de San José는 여성 카르멜 수도원으로 시작했다

Santa Teresa는 1569년 6월 Pastrana에 와 두 명의 수녀와 함께 여성 수도원을 준비했습니다.

6월 23일 Nuestra Señora del Consuelo라는 이름으로 Discalced Carmelite 여성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이 수도원의 역사는 오래 평온하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다시 에볼리 공녀였습니다.

에볼리 공녀가 수녀원에 들어오면서 큰 갈등이 벌어졌다

1573년 남편 Ruy Gómez가 갑자기 사망하자 Ana de Mendoza는 San José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일반 수녀처럼 엄격한 카르멜 규율에 따르기보다 자신의 귀족 신분에 맞는 생활방식을 요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갈등이 심해지자 Santa Teresa의 지시에 따라 당시 수도원에 있던 13명의 수녀가 밤에 몰래 Pastrana를 떠나 Segovia로 이동했습니다.

스페인 수도원사에서도 매우 극적인 사건입니다.

San José는 현재 카르멜 수도원이 아니다

카르멜 수녀들이 떠난 뒤 에볼리 공녀는 새로운 공동체를 들였습니다.

1574년 Concepcionistas Franciscanas가 수도원을 인수했고 이후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현 건물의 교회는 1582년 공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26년 현재 Convento de San José는 일반 관광객에게 내부 공개되지 않습니다.

외관을 중심으로 보고 Santa Teresa와 에볼리 공녀의 갈등을 이해하는 장소로 생각하면 됩니다.

남성용 Convento de San Pedro에서는 San Juan de la Cruz가 등장한다

Santa Teresa의 두 번째 파스트라나 프로젝트는 남성 수도원이었습니다.

Teresa는 Pastrana로 오던 길에 Mariano Azzaro와 Juan Narduch라는 두 은수자를 만나 이들을 새로운 카르멜 개혁에 합류하도록 설득했습니다.

1569년 7월 9일 두 사람은 Palacio Ducal의 예배당에서 수도복을 받고 San Pedro 수도원의 최초 수사들이 됐습니다.

이후 1570년에는 San Juan de la Cruz가 Pastrana에 와 수련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이곳에서 카르멜 신입 수도자들을 지도했습니다.

현재 이름은 Convento del Carmen이다

원래 남성 카르멜 수도원이었던 San Pedro는 19세기 Mendizábal의 수도원 재산 몰수 이후 변화를 겪었습니다.

1855년부터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Convento del Carmen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현재 교회와 회랑 일부는 Museo del V Centenario de Santa Teresa로 이용됩니다.

Luca Giordano, Paolo de Matteis, Juan Carreño de Miranda 등의 회화와 Gregorio Fernández의 Cristo de la Verdad 등을 볼 수 있습니다.

Museo de Santa Teresa는 주말에 맞춰 가야 한다

2026년 현재 관광청 안내 기준 Museo V Centenario Santa Teresa는 토·일요일 15:00~19:00 자유관람이 가능합니다.

단독 입장료는 €3이며 Palacio Ducal과의 결합입장도 안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Teresa의 흔적이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라면 파스트라나는 주말 방문이 훨씬 유리합니다.

San Juan de la Cruz의 동굴도 남아 있다

Convento del Carmen 주변에는 초기 은수자들이 사용하던 동굴과 San Pedro의 옛 작은 예배당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Pastrana 관광청은 San Juan de la Cruz가 수도원 수련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이 동굴에서 기도·명상·수련을 했다고 소개합니다.

화려한 대성당이나 궁전과는 반대되는 매우 단순한 공간입니다.

Pastrana에서 권력의 세계와 신비주의적 종교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Barrio del Albaicín에서는 Morisco와 실크산업의 역사를 보자

파스트라나 여행에서 놓치기 쉬운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16세기 산업도시의 모습입니다.

1570년 Granada 지역 Morisco 봉기 이후 사람들이 스페인 각지로 분산됐고, Ruy Gómez de Silva는 1,000명이 넘는 Morisco 주민을 Pastrana로 데려와 실크와 태피스트리 산업에 투입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만든 새로운 지구가 Barrio del Albaicín입니다.

이름 역시 Granada의 Albaicín 출신 주민이 많았던 데서 유래합니다.

Pastrana의 Albaicín은 Granada의 Albaicín을 복제한 곳이 아니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라나다의 구불구불한 언덕마을과 같은 도시구조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Pastrana의 Albaicín은 16세기에 산업·주거지구로 계획된 곳입니다.

현지 관광청은 이를 16세기의 계획적인 산업 확장지구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설명합니다.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졌고 중심도로를 따라 실크 생산과 상업·주거가 결합됐습니다.

초기의 일부 벽돌집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Morisco 주민들은 농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Plaza de la Hora 아래쪽 계곡의 농경지도 이 역사와 연결됩니다.

Morisco 주민들은 관개·원예 기술에 능했고 궁전 아래쪽 토지를 정비해 과수원과 채소밭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Pastrana의 16세기 성장은 단순히 공작가의 돈으로 궁전과 교회를 지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귀족권력 + 종교기관 + 이주 노동력 + 실크산업 + 농업기술이 함께 도시를 키웠습니다.

Fuente de los Cuatro Caños에서는 옛 시장도시를 볼 수 있다

Colegiata 주변 골목을 걷다 보면 Plaza de los Cuatro Caños가 나옵니다.

이곳은 과거 중세 시장이 열리던 공간입니다.

현재의 대표 분수는 1588년 만들어졌으며 Ruy Gómez de Silva가 건설비 일부를 기부했습니다.

Plaza de la Hora가 16세기 귀족의 새로운 중심광장이라면 Cuatro Caños 주변은 그 이전부터 이어진 생활·시장 중심입니다.

두 공간을 비교하면 Pastrana의 도시 중심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이동했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파스트라나는 Camilo José Cela의 ‘Viaje a la Alcarria’에도 등장한다

20세기 스페인 문학을 좋아한다면 Pastrana에는 또 하나의 여행주제가 있습니다.

Camilo José Cela가 1946년 La Alcarria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Viaje a la Alcarria』에서 Pastrana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특히 Plaza de la Hora와 Convento del Carmen 등 현재도 남아 있는 장소들이 그의 여행기에 등장합니다.

중세·르네상스 역사뿐 아니라 20세기 여행문학의 시선으로 같은 도시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Festival Ducal은 Pastrana 역사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Pastrana의 대표 문화행사는 Festival Ducal입니다.

주민들이 Princesa de Éboli, Ruy Gómez, Felipe II, Santa Teresa와 San Juan de la Cruz 등의 인물을 재현하고 르네상스 복장을 입고 역사 중심부를 행진합니다.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의상축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의상 제작과 역사재현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2026년 Festival Ducal은 이미 열렸다

올해 제24회 Festival Ducal은 2026년 6월 26~28일 ‘Poder y Mística’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올해는 San Juan de la Cruz가 주요 인물로 선택됐고, 르네상스 시장·역사극·궁전 연극투어·Tercios 재현·음악·행렬 등이 진행됐습니다.

현재 시점에는 올해 행사가 끝났습니다.

다음 해 여행이라면 해당 연도의 공식 날짜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8월에는 또 다른 축제 분위기를 볼 수 있다

2026년 여름 공식 Patronal Fiestas는 8월 12~16일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을 중심으로 열렸습니다.

15일에는 Colegiata의 미사와 행렬이 열리고, 마지막 날에는 주민들이 함께 먹는 전통 caldereta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Festival Ducal이 16세기 역사를 재현하는 관광·문화행사라면 8월 축제는 현재 Pastrana 주민들의 생활문화와 더 밀접합니다.

10월 15일은 Santa Teresa 축일이다

Santa Teresa는 Pastrana의 수호성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매년 10월 15일 Colegiata에서 미사와 역사 중심부의 행렬이 열립니다.

카르멜 역사와 Teresa의 흔적을 중심으로 여행한다면 의미 있는 시기입니다.

파스트라나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Pastrana는 La Alcarria 한가운데 있습니다.

따라서 음식도 이 지역의 목축·농업·양봉문화가 중심입니다.

공식 관광청은 대표적으로 cordero asado, cabrito asado, gachas와 migas를 소개합니다.

앞선 Castilla-La Mancha 도시들을 연속해서 여행했다면 구이와 migas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Pastrana에서는 음식 자체뿐 아니라 Miel de la Alcarria를 함께 경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양고기와 염소고기 구이가 기본이다

La Alcarria의 전통적인 목축문화 때문에 cordero와 cabrito 구이가 대표적인 메인요리입니다.

카스티야라만차는 2009년 지역의 cordero asado를 차별화 품질상품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점심에 여유 있게 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궁전과 태피스트리 가이드 사이의 짧은 시간에 무리해서 먹기보다 관람시간을 먼저 맞춘 뒤 긴 점심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Migas Pastraneras는 포도와 계란을 더한다

라 만차와 카스티야 여러 도시에서 migas가 계속 등장하지만 Pastrana 관광청은 현지 스타일의 특징으로 포도와 계란프라이를 추가하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오래된 빵·마늘·올리브오일·돼지고기를 이용하는 기본 구조에 단맛과 신선함이 더해집니다.

여러 도시에서 migas를 비교하고 싶다면 Pastrana에서는 현지식으로 주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Miel de la Alcarria는 꼭 기억하자

La Alcarria는 다양한 꽃과 건조한 구릉지 덕분에 오래전부터 양봉이 발달했습니다.

Pastrana 공식 관광청도 꿀을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소개하며 음식뿐 아니라 상점·디저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매년 봄에는 Pastrana에서 국제 양봉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양봉산업의 비중이 높습니다.

기념품을 하나 고른다면 지역 꿀은 가장 지역성이 강한 선택 중 하나입니다.

올리브오일도 La Alcarria의 보호상품이다

La Alcarria의 올리브오일은 DOP로 보호됩니다.

Pastrana 주변의 농업경관을 이해할 때 꿀과 함께 중요한 지역상품입니다.

식당에서 단순히 ‘스페인산 올리브오일’만 생각하지 말고 지역산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디저트는 Yemas de Santa Teresa를 찾아보자

Pastrana 관광청은 지역 단맛으로 dobladillo, yemas de Santa Teresa, bizcochos borrachos 등을 소개합니다.

Santa Teresa의 흔적을 따라 여행했다면 yemas de Santa Teresa로 마무리하는 것이 잘 어울립니다.

이 이름의 과자는 스페인 여러 테레사 관련 도시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Pastrana만의 독점적인 기원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Pastrana는 자동차 여행이 가장 편하다

Pastrana는 Madrid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Alcalá de Henares나 Guadalajara처럼 Cercanías로 바로 가는 도시는 아닙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Madrid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하고 Brihuega·Guadalajara·Zorita de los Canes·Recópolis 같은 La Alcarria 여행지까지 연결하기 쉽습니다.

도시 관광청은 역사 중심부 주변에 Camino del Hocino 약 70면, Spa Rural 인근 약 30면 규모의 주차장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구시가지 내부는 걸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대중교통은 Guadalajara 환승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Guadalajara 버스터미널에서는 Pastrana를 포함한 La Alcarria 지방노선이 운행됩니다.

2026년 검색되는 평일 서비스 가운데 Guadalajara에서 Pastrana까지 약 1시간 5분이 걸리는 직행편도 확인되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편수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Madrid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Madrid → Guadalajara → Pastrana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다만 평일과 주말 시간표 차이가 크므로 당일치기에서는 반드시 돌아오는 버스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동차가 있다면 Guadalajara와 같은 날 억지로 묶지 않아도 된다

앞선 #114 Guadalajara와 Pastrana는 같은 주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주제가 상당히 다릅니다.

Guadalajara

Mendoza 가문의 대도시형 궁전문화, Palacio del Infantado, 현대적인 주도

Pastrana

Silva-Mendoza의 공작령, 에볼리 공녀, Santa Teresa·San Juan de la Cruz, 작은 르네상스 귀족도시

하루에 두 곳 모두 볼 수도 있지만 내부관람 시간이 많은 Pastrana에서는 오히려 각각 하루를 나누는 편이 좋습니다.

Brihuega와 연결하면 La Alcarria 여행이 풍부해진다

Pastrana에서 북쪽·북서쪽 La Alcarria를 여행한다면 Brihuega와 함께 묶을 수 있습니다.

Brihuega는 성벽·왕립 직물공장과 여름 라벤더로 유명하고 Pastrana는 귀족·종교·실크의 도시입니다.

두 곳 모두 직물산업의 역사가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비교가 됩니다.

#122가 Brihuega이므로 다음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룹니다.

Recópolis와 Zorita de los Canes도 좋은 근교다

Pastrana는 Camilo José Cela의 Viaje a la Alcarria 코스를 따라 여행하기에도 좋습니다.

그의 여행에서는 Pastrana 이후 Zorita de los Canes와 서고트 도시 Recópolis가 등장합니다.

오늘날 Recópolis는 고고학공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Pastrana의 16세기 역사에서 수백 년 전 서고트 시대로 시간을 크게 되돌릴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여행이라면 매우 좋은 조합입니다.

파스트라나 반나절 추천 일정

시간이 반나절뿐이라면 내부관람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 Plaza de la Hora에서 궁전과 계곡 전체를 봅니다.

예약한 Palacio Ducal 가이드 시간에 맞춰 궁전 내부의 artesonado와 Ana de Mendoza의 감금공간을 관람합니다.

Calle Mayor 방향으로 내려가 Colegiata와 Museo Parroquial de Tapices를 방문합니다.

태피스트리 4점을 충분히 보고 공작가 크립트까지 확인합니다.

시간이 남으면 Cuatro Caños와 역사 골목을 짧게 걷습니다.

Santa Teresa 수도원까지 모두 넣으려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파스트라나 하루 추천 일정

오전

Plaza de la Hora → Palacio Ducal 가이드 방문 → 에볼리 공녀의 방과 발코니 → 궁전 artesonado → 역사 중심부

점심 전

Colegiata → Museo Parroquial de Tapices → Alfonso V 태피스트리 → 에볼리 부부와 공작가 크립트 → 주제단과 오르간

점심

cordero 또는 cabrito asado → migas pastraneras → Miel de la Alcarria를 활용한 디저트

오후

Fuente de los Cuatro Caños → Calle Mayor → Barrio del Albaicín → Morisco 실크산업의 흔적 → Convento de San José 외관

늦은 오후

Convento del Carmen 방향 → 주말이라면 Museo de Santa Teresa → San Juan de la Cruz 관련 장소 → Plaza de la Hora 복귀

하루 일정으로 가장 균형이 좋습니다.

주말에는 Pastrana 여행의 완성도가 더 높다

Museo de Santa Teresa는 현재 토·일요일 오후에 운영됩니다.

Palacio Ducal과 태피스트리 박물관의 가이드 프로그램도 주말에 여행자가 참여하기 상대적으로 편합니다.

따라서 첫 방문이라면 금요일보다 토요일을 가장 추천하기 좋습니다.

단, Festival Ducal이나 지역축제 주말은 방문객이 크게 증가합니다.

파스트라나 1박 2일 추천 일정

첫째 날

Plaza de la Hora → Palacio Ducal → Colegiata와 태피스트리 → Cuatro Caños → Albaicín → 저녁 구시가지 산책

둘째 날

Convento de San José 외관 → Convento del Carmen → Museo de Santa Teresa → San Juan de la Cruz 관련 장소 → La Alcarria 산책 또는 Recópolis·Zorita 방향 이동

첫째 날은 귀족·정치·예술, 둘째 날은 신비주의·종교·자연로 주제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봄은 La Alcarria와 함께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봄에는 주변 구릉과 농경지의 색이 살아나고 역사 중심부를 걷기 편합니다.

양봉과 꿀에 관심 있다면 지역의 봄철 양봉행사와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Convento del Carmen까지 걸어서 이동하기에도 여름보다 편합니다.

6월 말 Festival Ducal은 가장 파스트라나다운 시기다

올해 2026년 Festival Ducal은 6월 26~28일 열렸습니다.

축제기간에는 평소 박물관에서 설명으로만 만나던 Ana de Mendoza, Ruy Gómez, Santa Teresa와 San Juan de la Cruz가 실제 거리의 역사극과 퍼레이드 속 인물로 등장합니다.

Pastrana의 핵심 역사인 권력과 신비주의를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연도 방문자는 해당 연도의 공식 일정 발표를 확인하면 됩니다.

여름에는 한낮보다 오전과 늦은 오후가 좋다

Pastrana는 구릉에 자리해 골목에 경사가 있습니다.

7~8월 한낮에는 햇빛이 강합니다.

오전에 Palacio와 Colegiata 같은 주요 내부관람을 몰아서 보고 점심을 길게 잡은 뒤 늦은 오후 Albaicín과 수도원 쪽을 걷는 것이 좋습니다.

Palacio와 관광안내소도 점심시간 전후에 운영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사전예약이 유리합니다.

가을은 Santa Teresa와 미식여행에 좋다

10월 15일 Santa Teresa 축일을 중심으로 종교행사가 열립니다.

기온도 내려가 Alcarria의 구릉과 골목을 걷기 좋고 cordero·cabrito·migas 같은 음식도 여름보다 잘 어울립니다.

역사·종교·음식을 함께 즐기려면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에는 훨씬 조용한 Villa Ducal을 볼 수 있다

Pastrana는 대형 관광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겨울 평일에는 매우 조용합니다.

Plaza de la Hora와 귀족주택 골목을 차분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Museo de Santa Teresa나 일부 가이드 프로그램의 운영일이 제한적이므로 겨울에는 개방시간을 더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파스트라나 여행에서 피해야 할 일정 실수

Palacio Ducal을 Ana de Mendoza가 직접 처음 건설한 궁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설을 주문한 인물은 그녀의 할머니 Ana de la Cerda이고 건축가는 Alonso de Covarrubias였습니다.

에볼리 공녀가 검술 중 눈을 잃었다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검술 이야기는 전설이고 정확한 원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Plaza de la Hora의 ‘하루 한 시간 발코니’ 이야기 역시 역사적 감금사실과 전설을 구분해야 합니다.

Colegiata의 태피스트리를 Pastrana에서 제작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포르투갈 왕의 북아프리카 원정을 기념해 현재 벨기에 Tournai에서 제작된 플랑드르 작품입니다.

Santa Teresa와 Princesa de Éboli가 끝까지 좋은 후원자·수녀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정반대입니다. 공녀의 San José 입회 이후 갈등으로 카르멜 수녀들이 밤에 Pastrana를 떠났습니다.

Convento de San José 내부를 관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현재 일반 관광객에게 비공개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일 대중교통편을 현장에서 찾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Guadalajara–Pastrana 지방버스는 운행하지만 편수가 제한되어 왕복시간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파스트라나 여행 최종 체크리스트

Plaza de la Hora, Palacio Ducal, Ana de la Cerda와 1542년 건축, Alonso de Covarrubias, 플라테레스코 artesonado와 무데하르 타일, Ana de Mendoza Princesa de Éboli, Ruy Gómez de Silva, Antonio Pérez·Escobedo 사건과 궁전 감금, ‘한 시간 발코니’ 전설, Colegiat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1569년 Colegiata 승격, Museo Parroquial de Tapices, Alfonso V의 1471년 Arcila·Tánger 원정, Tournai 고딕 플랑드르 태피스트리, 에볼리 부부의 크립트, Santa Teresa의 1569년 두 수도원, Convento de San José, Convento del Carmen, San Juan de la Cruz, Barrio del Albaicín과 Morisco 실크산업, Fuente de los Cuatro Caños, Camilo José Cela의 Viaje a la Alcarria, cordero·cabrito asado, migas pastraneras, Miel de la Alcarria, yemas de Santa Teresa, Palacio·태피스트리 가이드 예약, 주말 Museo de Santa Teresa 운영시간, 주차와 버스 왕복편을 확인하면 좋습니다.

파스트라나 여행은 이런 분들에게 잘 맞는다

Pastrana는 Felipe II 시대 스페인 정치사를 좋아하는 분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Ana de Mendoza와 Ruy Gómez de Silva, Antonio Pérez를 통해 합스부르크 궁정의 권력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르네상스 귀족궁전을 좋아하는 분, 고딕 플랑드르 태피스트리에 관심 있는 분, Santa Teresa de Jesús와 San Juan de la Cruz의 신비주의·카르멜 개혁을 따라 여행하는 분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Morisco 역사와 실크산업에 관심 있는 분에게는 Barrio del Albaicín이라는 별도의 주제가 있습니다.

Camilo José Cela와 『Viaje a la Alcarria』를 좋아한다면 20세기 여행문학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도시 하나에서 권력·종교·산업·예술·문학이 서로 얽혀 있는 여행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만족도가 높습니다.

마무리

파스트라나의 역사는 작은 중세마을이 16세기 갑자기 스페인 제국의 정치와 연결되면서 시작됩니다.

13세기 칼라트라바 기사단이 정착시킨 마을은 1369년 Villa의 특권을 받았지만 여전히 La Alcarria의 작은 지역중심에 가까웠습니다.

변화는 1541년 찾아왔습니다.

Carlos I가 Pastrana를 칼라트라바 기사단에서 분리했고 Ana de la Cerda가 영주가 됐습니다.

그녀는 1542년 Alonso de Covarrubias에게 르네상스 궁전과 광장을 설계하도록 했습니다.

1569년에는 Ruy Gómez de Silva와 Ana de Mendoza가 Pastrana의 새로운 공작가를 이끌었습니다.

같은 해 Santa Teresa de Jesús가 도착해 여성용 San José와 남성용 San Pedro 수도원을 만들었습니다.

San Juan de la Cruz도 이곳에서 수련자들을 가르쳤습니다.

1570년에는 Granada에서 온 Morisco 주민들이 Albaicín 지구에 정착하면서 실크·태피스트리 산업과 원예농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공작가의 화려한 시대는 오래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1573년 Ruy Gómez가 사망했고 Ana de Mendoza는 Santa Teresa의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궁정으로 돌아간 그녀는 Antonio Pérez와 Escobedo 사건에 연루됐고 결국 자신의 궁전에 감금됐습니다.

1592년 그녀는 Palacio Ducal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궁전 앞 광장은 오늘날 Plaza de la Hora라고 불립니다.

하루 한 시간만 공녀가 발코니에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주민과 여행자에게 전해집니다.

역사와 전설이 가장 강하게 겹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Pastrana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Colegiata에는 Tournai에서 짠 거대한 15세기 태피스트리가 있습니다.

1471년 포르투갈 국왕 Alfonso V가 북아프리카 Arcila와 Tánger를 공격하는 장면을 거의 동시대의 전쟁기록처럼 보여줍니다.

궁전에서는 스페인 왕실정치를 봅니다.

크립트에서는 공작가의 죽음과 기억을 봅니다.

수도원에서는 Santa Teresa와 San Juan de la Cruz의 개혁과 신비주의를 봅니다.

Albaicín에서는 Morisco 이주와 실크산업을 봅니다.

그리고 골목 밖의 La Alcarria에서는 꿀·올리브·목축과 농업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생활문화를 만납니다.

그래서 Pastrana는 단순한 ‘Princesa de Éboli의 도시’가 아닙니다.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중세마을 → Ana de la Cerda의 르네상스 궁전 → Ruy Gómez와 Ana de Mendoza의 공작령 → Santa Teresa와 San Juan de la Cruz의 카르멜 개혁 → Morisco 실크산업 → 에볼리 공녀의 감금 → 플랑드르 태피스트리 → Camilo José Cela의 La Alcarria 여행이 하나의 작은 도시 안에서 이어집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하루를 가장 추천합니다.

Palacio Ducal과 Museo de Tapices의 가이드 시간을 먼저 예약하고 나머지 골목과 수도원을 사이에 배치하면 됩니다.

Santa Teresa까지 깊게 보고 싶다면 주말 1박 2일이 가장 좋습니다.

앞선 알라르콘이 후카르강이 만든 자연요새 위에 이슬람 성·Don Juan Manuel·중세 방어체계와 현대벽화가 겹친 도시였다면, 파스트라나는 에볼리 공녀·스페인 궁정권력·카르멜 신비주의·Morisco 실크산업과 세계적인 플랑드르 태피스트리가 한데 모인 La Alcarria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귀족도시입니다.

다음 도시가이드 #122에서는 브리우에가(Brihuega)로 이동해 중세 성벽·페냐 베르메하 성·왕립 직물공장·라벤더밭·지하동굴과 La Alcarria의 정원도시를 중심으로 다룹니다.